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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Mar 16. 2021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카시트가 양쪽에 두 개여서 더 문제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3월 기준 43개월 된 아들과 24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운전을 할 때면 뒤편 창문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써붙인 자동차를 자주 본다. 나 역시 'Baby in Car'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여놨다. 우리나라에선 '아기가 타고 있으니 양보해달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란 문구라든지 눈을 치켜뜬 아이를 익살스레 표현한 그림이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원래는 '사고가 나면 아이부터 먼저 구해달라'는 의미다. 종종 아이의 혈액형을 표기한 걸 볼 수 있는 이유다.


일어나선 안되지만 또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게 아이와 함께 탄 자동차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다. 어느 부모라도 아이를 먼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터. 충돌 상황에서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앞차를 들이박는 경우라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는 식. 본능이 그렇다면 불의의 사고 때 내가 살기 위해 동승자를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거다. 본능을 이기려면 '나보단 가족을 살려야 한다'고 수시로 되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되기 전에도 혼자 다짐을 하곤 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아내가 조수석에 있을 때 사고가 난다면 조수석에 탄 아내를 살리기 위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겠다(추돌 사고로 가정하겠다)고 말이다. 아내를 사랑해서이기도 하고 나 살자고 아내를 먼저 보냈다는 회한 속에 떠다니는 삶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쿨하고도 스윗한 다짐을 방정맞게도 아내에게 전한 건 첫째 아들을 낳고 나서다. 아내는 펄쩍 뛰었다. 감동해서가 아니다. 절대 그래선 안된다는 거였다. 아들이 앉는 카시트는 운전석 뒷자리다. 나를 희생해 아내를 보호한다며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면 아들이 다칠 수 있는 셈이다. 아내는 "꼭 나 말고 아들을 살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즈음 아내는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아내가 운전석에 내가 조수석에 앉을 일도 생겼다. 나 역시 아내에게 당부하고자 "부인도 비슷한 상황이면..." 

질문이 끝나기도 아니 시작하기도 전에 아내는 "당연히 남편 말고 아들 살려야지". 


그래. 나도 그거 당부하려고 했어. 


시간은 흘렀고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둘째는 어느덧 두 돌을 넘겼다. 현재 자동차에서 둘째의 자리는 조수석 뒤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90% 이상은 내가 운전석, 아내가 조수석, 첫째가 내 뒤에 카시트, 둘째는 아내 뒤에 카시트에 앉아 있다. 생각하기 싫지만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흡사 경제학이나 심리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상황 같기도 하다.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다짐을 해본다. 운전석이 최대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각도로만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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