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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Mar 23. 2021

하필 그런 걸 닮은 너...희들

좋은 것도 닮을 거지? 언젠간 그럴 거지?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3월 기준 43개월 된 아들과 24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집에서 저녁 식사로 카레를 먹었다. 아들은 숟가락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하나는 맨밥 먹을 때 쓰고 하나는 카레를 묻힌 밥을 먹을 때 써야 한단다. 얼마 후 식판에 밥과 국 반찬을 차려놨는데 아들이 딴청을 피웠다. 지켜보다 내가 아들 숟가락을 들어 국을 먼저 떠먹여 줬다. 그리곤 밥을 떠서 주려는데 '국물 묻힌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 어떡하냐'고 따진다. 난 "그럼 어떻게 해. 카레 먹을 때처럼 숟가락 하나 더 줘?"라고 물었다. 아들은 '그건 아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본인 생각에도 그건 좀 너무했나 싶었나 보다.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났다. 난 식당에서 앞접시를 자주 바꿔댄다. 2,3개를 동시에 쓸 때도 있다.


작년 온 가족이 바닷가에 놀러 갔다. 아들은 세 돌을 앞둔 때였는데 바닷물에 몸을 적시며 논 건 처음이었다. 숙소에서부터 커다란 튜브를 들쳐 메고 신난 발걸음으로 다다른 해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 샌들을 벗자고 하니 아들은 거부했다. 발에 모래가 묻는 게 싫어서였다.  

나의 어머니가 지금까지 백 번 가까이 얘기했을 에피소드가 30여 년만에 똑같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꺼내보는 어린 시절 사진 속 형과 나는 다른 모습이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 형은 맨발 나는 샌들을 신고 있다. 심지어 튜브를 타면서도 샌들을 신고 있다.

얘기를 전해 들은 내 어머니는 "이제 너도 당해봐라"며 박장대소하셨다.


아들은 안 그러길 바랐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살면 피곤한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빠를 따라 할까 싶어 일부러 아들 앞에서는 지저분해도 신경 안 쓰는 척하기도 했다. 물론 속으로는 신경 쓰였다. 허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본디 가진 성향은 어쩔 수 없었다. 인위적으로 바꾸려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둘째 딸은 다를까 궁금했다. 정확히는 다르길 바랐다. 딸은 오빠와는 다르다. 근데 또 내 성질머리를 닮았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치카치카를 마친 딸은 거실로 가다 말고 돌아왔다. 접혀 있던 발수건을 펴고 나서야 다시 갈 길을 간다. 그 후로도 자주 목격됐다. 우리집에서 그런 사람은 나와 딸 둘뿐이다. 아니 둘이나 된다.  


몇 달 전부터 딸은 잠들기 전 수차례 물을 먹는다. 한 번 먹고 잠이 안 들면 이내 물을 찾는다. 딱히 목이 마를 상황이 아니어도 그렇다. 배도 아플 것 같고 자다가 쉬도 할 것 같아서 "오니(딸의 애칭)야 물 그만 먹어도 돼. 배 아야아야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딸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에는 다섯 번 이상은 먹는 게 루틴이 된 듯하다. 걱정하면서도 물이니까 괜찮겠지라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시간이 꽤나 지나고 불과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그건 나였다. 난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베개 옆에 물통을 두고 잔다. 잠들기 직전 물을 마시고 눕는 게 오랜 습관이다. 그렇게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면 잠시 뒤척이다 다시 물을 먹는다. 입안과 목구멍이 촉촉한 상태여야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통을 마음대로 사용 못할 때면 곤혹스러웠다. 군대 훈련소 때와 이등병 때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떻게든 물을 구해 마시고는, 정 안되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이라도 마시고, 물을 입안에 머금은 채 침상에 누웠다. 그랬는데 잠이 안 오면 꽤 큰 스트레스였다. 잠이 들려면 물을 또 마셔야 하는데 일일이 보고하고 눈치 보고...


잘 때가 되면 그토록 물을 찾는 딸을 보면서 괜스레 타박만 했지 내 습관을 떠올리지 못했다. 근데 결국 나를 발견한 순간 이해되다 못해 울컥했다. 뭐랄까. 아들의 모습에선 피식 웃음이 났는데 딸의 모습에선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이다. 왜 그런 걸 닮고 그래. 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아들과 딸이 자신의 원래 모습대로 살면서 행복하길 기도하고 응원하는 수밖에. 나만 놓고 봐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일종의 강박을 고백하게 된 게 그렇다. 타인에게 고백한 게 아니라 나에게 고백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다독였다. 남들에게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에게 감출 필요도 없다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고.


아들딸이 좀 더 크면 넌지시 말해줘야겠다. 아빠도 그렇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고.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노력할 필요 없다고. 다만 안 그런 사람보다 피곤하긴 할 거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난 그냥 날 닮은 아들딸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거나 가끔 울컥하고 그래도 흐뭇해하고. 그렇게 나도 너희들도 함께 커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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