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행 중인 빔 벤더스 감독전 상영작 중 딱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뭐 볼래?
라고 AI한테 물어보진 않았는데,
AI한테 물어봤다고 해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은 요즘이다.
AI 말고 나한테 물어본다면 답은 <이 세상 끝까지>.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이 1991년도 SF 영화는
물론 현재 존재하는 수준의 AI를 떠올리는 것까진 해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가 꽤나 많이 긁힐 정도로 핵심적인 것들을 예견하는데 성공한다.
긁히는 건 우리가 현실에 숨기고 싶은, 굳이 스크린에서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빔 벤더스가 그린 영화 속 시대 배경인 1999년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때다.
오래된 SF 영화들이 그렇듯 조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영상 통화가 공중전화박스에서 가능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는데,
문제는 통화를 공중전화박스에서 해야 된다는 것 그 자체다.
까딱하면 진짜 저 변변찮은 일상이 우리의 현재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하기도 하고.
만약 이게 현실이라면 <원배틀애프터어나더>의 그 공중전화 씬은 지금만큼 웃기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여기에도 영원히 남을 무언가를 좇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철저히 한 인간이 물리적으로 잡을 수 있는 감각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의 경우는 이야기(소설)를 쓰고,
뒤의 경우는 기술을 개발/활용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최신 테크는 꿈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장치다.
그걸 재관람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아직 광고는 붙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걸 프리미엄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은 곧 이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꿈에, 혹은 이미지에, 그것이 주는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자기 자신을 맡긴 대상은 기계다.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세상 끝까지>는 28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이지만,
그러나 영화는 정말로 세상의 끝까지를 떠올릴 수는 없다.
또 이 영화는 ‘빔 벤더스의 궁극의 로드 무비’로 소개되기는 하지만
그리고 정말로 많은 장소의 이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의 상당 부분은 길이 아닌 곳에서 진행된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그 당시 상정하고 있던 ‘더 좋은 길’이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가 상상한 최신 기술이 다소 조악하고 또 극단적이라,
이 기술/기계의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한 인물들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딜레마가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가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것은 타이프라이터다.
타이프라이터라는 열려 있지만-닫힌 길.
아날로그 기계이지만, 이 이미지로는 0과 1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열린 길인 것처럼 시작했다가
결국 닫힌 길로 끝나는 영화.
(아직까진) 빔 벤더스 필모그래피에 대한 상징적인 비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됐던 빔 벤더스 이름이 걸린 기획전에 참 잘 어울리는 영화다.
……물론 그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행복한 작업 인생을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