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있을까 싶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 동창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데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대학 입학하고 신입생 환영회를 거치고 나서니 고등학교보다는 대학동창의 개념이 강하다. 대학 때도 그렇게 친하다고 하기엔 우린 같은 무리가 아니었다. 대학시절 동기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 운동을 열심히 하는, NL이니 PD니 했던 운동권 친구들, 공부도 운동도 모두 열심히 안 하고 그냥 음주가무에 빠진 소위 날라리 친구들. 이런 그룹에서 세 번째 그룹에 속했는데 그 그룹에서도 또 갈렸다. 당구나 볼링 같은 운동에 더 집중하는 집단이 나였고 술이나 클럽에 집중하는 쪽이 있었다.
대학 때는 그렇게 결이 다른 삶을 살다가 졸업하고 나니 되려 가까워졌다. 고등학교 모임에서 L은 총무를 맡아서 나를 동창모임에 자주 초대했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서로를 알게 된 건 대학 졸업 후 다. 대학동창으로 L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L은 같지만 다른 성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L은 특별히 부자와 가난함이 부각되지 않던 고만고만하던 시절에 나름 사업하시는 부모님 덕에 용돈이 무리의 동기들보다는 넉넉한 편이고 성격도 호탕한 부잣집 아들 스타일이라서 후배 여자아이들이 좋아했다. 1%라도 이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여자 후배와 결혼했다. 동기 중에 제일 먼저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호주로 유학 떠났고 자연스럽게 자녀도 제일 빠른 편에 속 한다. 벌써 아들이 대학생, 고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예전처럼 다 같이 모이는 일은 줄었는데 종종 그 녀석이 있는 가산동 근처에 외근이 있으면 커피 한잔 핑계로 들르곤 한다. 대학생 때보다 두배나 나이가 더 먹은 중년의 소년들은 여전히 고등학교, 대학교의 추억을 더듬으면서도 이제 지금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중년의 고뇌도 이야기하고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는 불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언제부턴가 나도 이 친구가 더 편안해졌다. 같이 사업을 한다는 공통점이 어쩌면 코드가 맞느지 모르겠다. 사회생활오 나온 친구들도 세 그룹으로 나뉜다. 아직까지 근근이- 자신들의 표현으로- 직장에서 월급쟁이로 버티는 친구들, 반강제적으로 자영업의 길로 나온 친구들, 수는 많지 않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 이밖에도 세월의 무게 속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닫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유형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너무 다른 삶 속에 있으면 공감도 이해도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남의 삶을 저울에 올리곤 한다. 감당할 수 없이 큰 삶이나 너무 깃털처럼 가벼운 삶을 어찌 맞춰줄 수 있을까 싶다. 핑계라고 하기엔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인생의 절반쯤 살았다면 지금 서 있는 위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외적으로 내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막을 길 없다.
친구도 같이 가는 친구면 좋겠다. 찢어지게 가난한 의식으로 시대를 비판만 답 없이 몽상하는 중년보다 넉넉한 마음에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중년이면 좋겠다. 시간을 딛고 여기까지 존재했으면 존재의 가치는 증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열정과 패기만 있어도 아름다운 청년 시절을 지나온 중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친구라면 내 친구라면 그래야 한다. 나도 그 친구에 부끄럽지 않은 친구여야 하고
#hanxs
#친구자격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