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여유, 그런데 왜 그랬어요?

- 나는 무해한 사람이지만 알릴 방법이 없었다.

by hanxs

목동에서 미팅이 있어서 갔는데 건물 내 주차장이 만차여서 옆에 있는 건물에 지상주차를 했다. 미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빼려고 주차장에 왔더니 내 차 뒤에 흰색 아반떼가 주차해 있다.

"10분, 아니 15분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교육 중이라, 점심시간입니다"

"네"


카페에 가기에 부족한 시간이라 그냥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로 했다. 차에 에코백에서 주섬주섬 찾아보니 지난주 토요일판 신문이 있어서 잘 됐다 싶어 주차장 맞은편 이면도로 연석에 깔았다

건물 지상주차장이 바로 보이면서도 사람과 차가 별로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신문지를 깔고 앉은 연석에 온기는 구들장처럼 은근히 따듯하다. 오전에 오락가락한 비에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8월 중순은 비가 오거나 해가 쨍하거나 상관없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소나기가 그친 자리엔 매미소리만 가득한 한가로운 도심의 오후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분은 넘은 듯한데 잘 모르겠다. 전화 통화한 시간을 볼까 하다가 그냥 제발 10분만이라도 아무 방해받지 말자 했는데 벌써 초반에 잡일을 했다. 조금 전 미팅을 마치고 받아 든 명함을 정리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명함 앱에 등록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을까 말까 하던 차다. 왼손에는 명함 세장이 오른손에는 핸드폰이, 시선은 이면도로 건너편에 물끄러미 앉았다. 무념무상의 상태처럼 보였지만 머릿속에는 온갖 것이 혼돈스러웠다. 손에 들고 있는 명함에게 뇌에서 미세하지만 '관심'이 머리를 타고 왼쪽 어깨를 지나 승모, 팔뚝, 손등, 손가락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명함을 쥐고 있는 사실 하나로 세포들이 종이명함의 구겨진 모서리처럼 구부정하게 왼쪽 손에 쏠려있다. 세포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키려고 명함을 주머니에 '관심'과 함께 봉인했다. 핸드폰도 옆 연석 위에 두었다. 최소한의 고립으로 마음을 자유를 얻었다.


옹색하게 얻어낸 5분여의 자유시간 전리품은 소소하다. 주황색 젤리슈즈 신은 엄마와 반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아들이 손잡고 걷는 모습을 담았다. 털이 덥수룩한 종아리를 드러낸 감색 반자니에 하얀색 티를 입고 백팩에 장우산을 메고 가는 취준생을 보았다. 엄마의 손에는 든든함이 쥐어져 있었고 취준생의 어깨에는 담담한 성취감이 보였다.


수업 중이라고 10분 혹은 15분 후면 점심시간이라고 속삭였던 분이 어느새 나와서 차를 뺀 상태를 안건 나름의 여유를 즐기던 중, 이면 도로에 초점을 두었던 시선을 건너편 차 쪽으로 넘겼을 때다. 내 차 뒤에 있던 흰색 차가 빠지고 녹색차가 들어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가방, 핸드폰, 신문 다 연석에 두고 달려갔다. 내 차 뒤로 들어오려던 운전자와 눈빛과 손짓으로 '앞에 차 이제 나갈 겁니다'라고 알렸다. 궁금했다. 왜 흰색 차주인은 차를 뺀다고 말하지 않은 걸까? 분명 내가 기다린다고 했는데 만약에 내가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으면 또 녹색 차주에게 전화를 하게 될 텐데...

생각의 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도마뱀 꼬리처럼 자르고 오려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진짜 궁금했다. 이 곳 상황을 멀찍이서 흘겨보고 있는 흰색 차주를 불러 물을 만큼의 용기도 없다. 시비를 걸고 싶지도 않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물을 수는 없어서 자문자답으로 결론지었다.


세상이 험하니까 혹시 모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조용히 차를 옮겼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지만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이 정도로 해야 마음에 위안이 된다. 그와 나, 모두 마음에 상처 없는 Win-Win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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