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 마통이 있다.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마통 하나쯤은 다 있다. 많은 한도, 낮은 이자율이 금융기관에서 순수한 '금융소비자'인 나를 평가한 결괏값을 대입한 내용이다. 내 삶이 자본주의에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천만 원, 이천 만원, 0천만 원
2.X프로, 3.X프로, 4.X프로...
지금이면 인권위에 학생들이 고발할 내용인데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을 보고 나면 교실 뒤편 게시판에 성적표를 붙였다. 1등부터 꼴찌까지 이름과 시험 점수를 공개했다. 그때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특별히 나쁘다는 생각도 못했다. 비인격적인 시대의 단면이다. 마통의 대출한도와 이자율은 공표하지 않지만 금융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금융 성적표 같은 것이다. 어쩌면 더 잔혹할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자격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못 갖는 사람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꼭 있을 필요 없는 황금돼지다.
언제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손에 쥐어 본 적 없는 '가상'의 돈이 들어있는 황금돼지 일 일뿐이다.
황금돼지는 미래의 행복을 먹고 큰다.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래의 행복이 쪼그라든다.
마통은 은행에 맡긴 행복인데 이자가 마이너스로 붙는다. 쓰면 쓸수록 행복은 소멸해간다
오늘부터 마통과 헤어지기 1일 차다.
그동안 든든하지만 씁쓸했다. 이제 우리 그만 안녕 또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