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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xs Sep 24. 2022

게임해도 돼? 그럼 물론!

- 8살 남자아이의 요청

8살 아들 : 아빠! 아빠! 나 게임해도 돼?

나 : 물론 되고 말고 안될게 뭐가 있겠니? 진심이다. 게임이 불법도 아니고 왜 안 되겠어. 된다. 된다.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아이에게 달라진 하나는 돌봐주시던 이모님의 부재다. 엄마처럼 돌봐주실 분을 찾았고 아이를 돌보는 진심 정도는 달라도 명목상의 행위는 집에 엄마가 하는 일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하교를 도와서 집까지 왔고 학원이 끝나고 학원차가 아파트 후문에 도착하면 아이와 함께 집으로 왔다. 학교에서 집, 아파트 후문에서 집까지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6차선 큰길 신호등 하나를 건너가야 하는 게 부모 마음에는 태평양을 혼자 돛단배로 건너는 만큼이나 위험하게 느껴진다. 집에 와서는 집안일은 일절 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조건으로 아이를 돌보기로 하고 선택한 이모님이었다. 7살부터 맡아오신 이모님은 고딕체 같은 분이셨다. 늦지도 않고 일찍 가지도 않고 딱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고 가셨다. 이전에 아이가 유아기 때 계셨던 이모님은 손글씨 같은 분이셨다. 아이가 4살 때 처음 맞은 이모님은 굳이 말씀을 안 했는데 입맛에 맞는 요리에, 뒤처리가 번거로운 밀가루 놀이나 흙놀이도 서슴없이 하셨다. 친손자라도 선뜻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반된 스타일의 두 분의 이모님 모두는 우리 가족에겐 6번째 복이 잘 맞았다고 자부했다. 교감이 필요한 시기에는 손글씨 이모님을 공부에 눈뜨는 시기에는 고딕체 이모님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8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고딕체 이모님이 그만두게 되었다. 개인 사정이라고 하시면서 계약서대로 그만 두기 1달 전에 우리 부부에게 통지하셨다. 역시 FM이시다. 통지를 받은 우리는 패닉에 빠졌다. 결혼 전부터   양가에 어르신에게 부탁하는 건 하지 않기로 했고 그럴 상황도 안되었다. 다시 새로운 이모님을 찾는 방법이 제일 먼저 떠 올랐지만 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건 하고 싶지 않았고 물리적인 시간도 촉박해서 최후의 결론은 그냥 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위험하고 신선한 도전

평일 2시간 남짓 시간을 8살 남자아이가 혼자 보내는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도전이었다.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고 혼자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3분 남짓의 하굣길에 발생 가능한 수많은 걱정은 악어의 이빨처럼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부모에게도 도전은 마찬가지다. 8살 꼬맹이를 혼자 둬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 아이를 두고 직업(돈)에 집중하는 게 결국은 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함인데 이런 모습은 과연 맞는가 하는 삶의 좌표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에서부터 혼자 있을 때 혹시 위험한 상황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까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실제 맞벌이 부부 형태 (초등학교 부모 중심) 통계


실제 현실

아이는 3월 입학하고 5개월 넘는 동안 별다른 일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적응하고 있다. 혼자서도 잘하고 있다는 평을 내릴 만하다. 집안에 보안을 위해 설치한 웹캠을 보면 미안하고 기특하다. 5시께 집에 오면 책가방을 자기 방에 넣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때도 종종 있다. 옆에 있었다면 의자에 앉는 자세에 대한 잔소리 집중에 대한 잔소리 등등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중요한 건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시간에 스스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일은 열에 한두 번이고 대부분은 앉은 것도 아니고 누은 것도 아닌 요가 수행하는 자세 같기도 하고 아크로바틱 공연자의 자세 같기도 한 자세로 TV를 본다. 내가 아이 입장이라면 한 달 20일 중 10번은 TV를 보고 20번은 TV와 핸드폰을 같이 보고 있었을 텐데 백배 낫다.  

무엇보다 신통방통한 거 하나는 아이는 전화기(핸드폰)를 전화기로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핸드폰을 사줬는데 실제 전화 기능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의 감동 포인트다. 태블릿으로 게임을 해 봤기에 핸드폰에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바도 아닌데, 게임은 무관심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학교 끝나고 돌아온 텅 빈 집에서 전화로 아빠한테나 엄마한테 전화를 하는 거 말고는 핸드폰을 '다른'용도로 사용하고 않고 있다. 


걱정했던 그 상황

이런 아이가 얼마 전에 전화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아빠! 나 게임해도 돼?

물론 되고 말고 안될게 뭐가 있겠니?

진심이다. 해도 된다 게임. 


그날이 마침내 왔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오더라도 더디게 오기를 진심으로 기댔던 그날이다. 게임에 입문하는 날, 이제부터 아이와 나의 시대의 숙명의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이 불법도 아니고 왜 안 되겠어. 된다. 된다. 된다. 하지만... 이제부터 감내해야 될 상황이 공포와 불안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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