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원

by hanxs

도서관에 가면 대출 최대치인 10권을 빌려온다. 대게는 미리 무슨 책을 빌릴지 목록을 만들어서 바로바로 검색하고 찾는다. 그러고도 신간 코너에 가서 기웃기웃한다. 새로운 책에 대한 본능적인 소유 욕구가 분출된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에 진열될 로봇과 자동차 사이를 거닐면서 선택의 괴로움을 즐기듯이 나도 어떤 책을 가져갈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한다. 에코백에는 숨 쉴 공간 없이 빽빽하게 책이 담겨있다. 책들의 분노는 에코백에 선명한 네모 자국으로 표현되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마감이 없는 요청을 받았다. 지역 신문에 칼럼란에 사용될 수도 있는 '칼럼'을 하나 써서 보내드려야 한다. 정확하게는 칼럼을 고정으로 쓸지 아니면 기고로 끝낼지를 '시험'받는 답안지를 제출하는 일이다. 글 요청을 받은 건 얼추 3주가 지났다. 요청을 받았을 때, 바로 당장 보내겠다는 결심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바쁜 일들이, 아니 그냥 일상에 일들을 닥치는 대로 처리하다 보니 글 요청에 대한 답이 늦어졌다. 더 늦으면 못 보내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스스로 '마감일'을 정했다. 당장 내일까지.... 그렇게 정하고 나니 신기하게 결과가 나왔다. IT업계 입문하고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납기는 생명, 품질은 양심'이란 말을 '나 오늘부터 다이어트한다'라는 말만큼이나 자주 들었다. 거친 명언이지만 인생에 대입하면 웬만한 사항은 다 들어맞는다.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에서 일반 보고서 제출 심지어 공과금 납부에 이르기까지 적용 가능하다.


모든 일의 마감을 알고 준비하는 삶은 아름답다. 인생여행의 끝처럼 긴 호흡뿐 아니라 하루하루의 파편 같은 삶에도 마감이 필요하다.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으로 출근하듯 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히 돌고 도는 삶 속에도 짧은 '숨표'가 필요하다.

F1(포뮬러 원)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경주대회를 보면 트랙을 돌다가 핏 스탑(Pit Stop)을 한다. 경기중에 차고에 와서 주유도 하고 바퀴를 바꾸고 정비를 하는 행위다. 최고의 팀도 대게 10초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0.1초에도 순위가 바뀌는 경기에서 10초라는 시간을 쓰는 이유는 결승점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함이다. 10초가 아까워서 그냥 달리면 결승점까지 완주할 수 없다.


오늘도 달렸다면 잠시의 정비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멀리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쉬고 좋은 마음으로 채워줘야 한다. 우리 몸과 마음 하루 이틀 쓰고 말 거 아니고 평생 동행해야 하니까


#포뮬러원 #워라벨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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