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녹여라
날마다 듣던 소리를 다시 듣고 고쳐 듣게 되는 계기기 생겼다. 익숙함은 무감각함의 다른 면이다.
10년을 타던 G37 세단은 이제 주차장에 두고 SUV 새 차를 맞았다. 새 차는 모든 게 어색했다. 기존에 세단을 타다가 SUV로 바꾸고 나니 운전석에서 보이는 시야, 차량의 폭과 길이, 트렁크의 크기 그리고 사이드미러의 시야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달랐다. 거의 모든 것을 새로 적응해야 했지만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블랙박스다.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라서 10년을 같이한 지기라고 할 수 있다. 따로 작동법이든 뭐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랬는데 아이가 나의 관성에 제동을 거는 한 마디를 했다. 뒷 자석에 앉은 아이가 아빠 블랙박스에서 안전 운전하라고 하는데 왜 대답 안 해?라고 말한다. "응? 뭐라고?" , "아빠 이제 네라고 대답해 알았지?" 라며 단호하게 명령을 한다. 그러고 보니 새 차 블랙박스에서는 음성으로 "오늘도 안전운전하세요" 라고 상냥한 멘트를 했다.
이전에 탔던 차의 블랙박스에서는 음성을 꺼 놓았던 게다. 그런데 새 차에서는 기본 세팅으로 되어서 음성안내로 시작하는가 보다. 나도 아이도 이전 블랙박스에서 새 블랙박스의 차이를 같이 경험했지만 아이는 알아냈고 나는 몰랐다.
익숙해진다는 함은 게으른 뇌가 생각하지 않고 명령을 내리는 행위라고 하는데 내 삶이 자꾸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건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다. 아이의 눈과 귀는 열려있어서 다른 소리, 다른 색을 바로바로 찾아낸다.
이제는 천재로 생을 마감하기에도 너무 노회 한 나이가 된 시점에 6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무모함을 품을 만큼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게으른 뇌가 내리는 명령에 절대복종하지 않기 위해서 나이를 녹이고 녹여서 '아이처럼' 생각해 보려 한다.
나는 아이와 같이 탈 때뿐 아니라 혼자 차에 올랐을 때도 블랙박스의 상냥한 멘트에 대답한다.
"안전 운전하세요"
"네" (마음속으로 : 안전 운전할게요)
참고로 "네"라는 단순한 답이 재미없어서 몇 가지 버전을 시도했었다.
"네, 그럼요"
"네, 암요 암요"
"네, 알겠습니다" 등등
그런데 아이는 단호하게 "아니냐 그냥 네 해"라고 말해서 나는 "네"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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