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20이 개막되기 전, 국내 축구팬들은 잉글랜드의 아킬레스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초호화 멤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막상 메이저 대회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례가 있음에도 잉글랜드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는 컸다. 최근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선수들에서 잉글랜드 국적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메이슨 마운트(첼시), 필 포든(맨체스터 시티), 제이든 산초와 주드 벨링엄(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데클란 라이스(웨스트햄) 등이 모두 잉글랜드 유망주이다. 거기에다가 ‘무관의 제왕’이라 불리는 해리 케인(토트넘)이 최전방에서 버티고 있다.
사람들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잉글랜드는 유로 2020 조별예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좋은 성적(2승 1무)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3경기 동안 2골을 넣는 데 그치는 등 잉글랜드의 경기력은 무기력했다.
사우스게이트 이후 대안이 부족한 잉글랜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출처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6480
조별 예선을 겨우(?) 통과한 잉글랜드가 16강에서 마주한 상대는 독일이다. 최근 독일은 2010년대 초중반처럼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카이 하베르츠(첼시)와 세르주 그나브리(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골 넣는 윙백인 로빈 고젠스(아탈란타 BC)가 미친 활약을 한다면 잉글랜드는 일찌감치 짐을 쌀 수 있다.
잉글랜드가 일찍 고배를 마신다면 현지 언론에서는 여러 인물을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퇴진을 외칠 것이다. 부진한 성적에 수장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사우스게이트 감독 이후 잉글랜드는 최고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유망한 선수는 넘쳐나지만 자국 출신 명장은 전무한 게 잉글랜드의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6위 팀 감독 중 잉글랜드 출신은 0명이다. 펩 과르디올라(맨체스터 시티ㆍ1위)는 스페인, 올레 군나르 솔샤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ㆍ2위)는 노르웨이 출신이다. 위르겐 클롭(리버풀ㆍ3위)과 토마스 투헬(첼시ㆍ4위)은 독일인이다.
잉글랜드 출신일 거 같은 브랜던 로저스(레스터 시티ㆍ5위)는 북아일랜드, 데이비드 모예스(웨스트햄 유나이티드ㆍ6위)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잉글랜드와 달리 명장 속속 배출하는 독일
한지 플릭(왼쪽) 감독과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출처 : https://www.chosun.com/sports/sports_photo/2021/04/19/4IKGLB6OQSIGZW
잉글랜드 감독난은 어제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유로 2016 이후에도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로이 호지슨 후임 감독을 선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고민 끝에 협회는 샘 알라다이스 감독을 임명했지만 팬들의 비난은 상당했다. 알라다이스 감독은 압박ㆍ전환ㆍ속도로 대표되는 현대 축구 트렌드와 전혀 다른 ‘롱볼 축구’를 선호해서다.(이후 알라다이스 감독은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고, 사우스게이트가 대표팀 감독으로 낙점됐다.)
상황이 이런지라 축구팬들은 고인이 된 바비 롭슨 감독 이후 잉글랜드 출신 명장이 있냐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바비 롭슨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4강에 올려놓았다. FC바르셀로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포르투, PSV 에인트호번 감독도 역임하는 등 클럽 경력도 화려하다.
잉글랜드와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국가는 독일이다. 클롭, 투헬뿐만 아니라 젊고 유망한 감독이 많다. 각종 최연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율리안 나겔스만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대표적이다. 한지 플릭(독일 대표팀 내정), 마르코 로제(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또한 유럽이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다.
잉글랜드 출신 명장이 적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부재,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이 잉글랜드 지도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점 등. 분명한 점은 잉글랜드가 감독 육성을 게을리한다면 ‘잉글랜드가 곧 약점’이라는 비아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