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안도를 얻는다

우울을 물려받은 내가 써 내려간 답안지

by 한여름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우울할까.

가끔은 다른 친구들의 엄마처럼 호들갑스럽게 웃어도 좋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장난을 쳐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화를 내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인형을 사달라고 떼쓰고 싶었다.

엄마에게 동생이 짜증 난다고 말해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표정이 지워진 얼굴에는 무기력과 포기, 이따금씩 죽음의 그늘이 어른거렸고 어렸던 나는 그게 무서웠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땐 이미 나도 우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그 우울에 몸을 맡기고 흘러 다녔다.

그렇게 흘러 다니다가 다다르는 곳은 외로움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외로움에 도달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의 연애를 실패했고, 실패하면서

서서히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았다.

엄마와 똑같이 지긋지긋하게 우울하고 진심으로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인간.

바뀌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하며 살까?

내가 아는 사랑은 차갑고 매몰차며 엄격했다.

하지만 다들 가볍게 웃고 있잖아.

그 사랑에 물음표를 막 찍었을 때 남편과 결혼했다.


나는 나만의 숙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결혼했지만 남편이, 혹은 시간이, 끊임없는 물음표들이,

아이가, 아이와 마주하는 내 모습이 주던 좌절감이

숙제에 대한 답을 써 내려가게 했다.

쓰고 또 쓰고, 썼던 걸 고치기도, 박박 지워가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이 궁금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빠가 자기만 혼낸다고 눈물 흘리며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일 때

잠들기 전 좋은 꿈 꾸라는 마법을 걸어줄 때

반찬이 맛없다고 짜증 낼 때

같이 카드 게임을 하며 웃을 때

게임에서 엄마한테 자꾸 진다며 울 때

내 재채기 소리가 웃기다고 놀릴 때

내가 던진 농담에 깔깔대며 웃을 때

어느 날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고,

내 직업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미심쩍은 눈길로 훑어보며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맞아?" 의심할 때

나는 사랑을 안다.

아이들이 나처럼 크지 않고 있다는 무수한 증거들을 마주할 때 나는 안도한다.

나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좀 별로인 인간이었거든.


하지만 내 엄마는 여전하다.

요즘 일련의 사건들로 심하게 우울해하고 그 우울함을 여지없이 주변 사람에게 전가한다.

그 친숙한 우울을 조금은 슬프게, 한편으로는 짜증스럽게, 또 안쓰럽게, 어떨 때는 타인처럼 응시한다.

어렸을 때의 소망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덜 예쁘고, 덜 날씬하고, 덜 똑똑해도 되니까 다른 친구들의 엄마 같다면

어느 가게의 채소가 싸다든가, 어디 마트가 세일 중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말한다면

조금 먼 거리도 억척스럽게 걸어 다닌다면

아줌마들과 서로 자기 남편과 자식 흉보기를 한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엄마는 덜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