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왜 이 정도의 인간밖에 되지 못하는가

by 한여름

눈치를 보며 커서 메타인지가 지나치게 발달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 질문에 갇히게 된다.

나는 왜 이 정도의 인간밖에 되지 못하는가.

스스로를 괴롭게 파헤치게 되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리고 싶었다.

나 자신을 조각조각 내더라도, 그 작은 조각들로 다시 한번 스스로를 재조립하고 싶었다.

그렇게 스무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일기는 엄마에게 우울을 유산처럼 물려받아 감정에 몸을 맡기고 되는대로 흘러 다니던 이십 대를 지나,

아이를 낳고 우울한 유전자를 거스르기 위해 싸우며 승리와 패배를 엇비슷하게 반복하던 치열한 날들을 거쳐 마침내, 다정함을 학습하게 된 서늘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 인간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납작하게 누를 줄 아는 교사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꽉 끌어안아줄 수 있고,

내 아이도 직업병처럼 '너 뭐 되냐'고 평가하는 눈으로 보다가도 아차 싶어 그 눈을 뒤늦게 감아보는 엄마이기도 하다.


과거의 엄마를 굳이 용서하거나 이해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비로소 시작된 진짜 독립,

그리고 교실과 가정 사이에서 길어 올린 서늘하지만 단단한 사랑의 문장들을 담았다.

그 문장들은 우울은 유전되지만 다정함은 학습될 수 있음을, 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의지임을 증명하는 고백이다.


여전히 타고난 다정함이 결여되어 서툴고 자주 틀리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다정해 보이고 말겠다는 의지로 한 인간이 재조립되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