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완벽한 타인이 되고 싶었다

솔직할 순 없겠지

by 한여름

동생과 통화를 끝내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기억나?

나도 그랬어.

그래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뛰쳐나온 거야.

제일 웃겼던 말이 뭔 줄 알아?

계속 있었으면 정신병 걸렸을지도.

자기만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고 남들은 다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지.

우울하고 아프지 않은 날이 언제였는데?

죽을 때까지 아마 그럴 거야.

웃기지 마, 자식보다 부모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왜냐면 부모는 자식 앞에서 어떤 척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든. 그래서 날 것의 상태로 남게 돼.

자기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신과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클수록

나는 아마 그날 이후로 대화를 포기했을 거야.

언제나 웃었다니 대체 언제

닮았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착각이야. 난 닮지 않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고. 그게 얼만큼 힘든 일인지,

사과를 해본 적이나 있어?

어떻게 살든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그럭저럭 무시하고 지낼 만큼

죽은 사람은 언제나 애틋하시겠지, 산 사람은 귀찮고 볼품없더라도.

어른이 아이에게 맞추는 거야, 아이를 어른에게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부모의 기분에 따라 판단할수록 아이는 우울하고 무기력해져.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는 일밖에 없어지거든.

너도 알잖아.


가족에게 솔직해지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

그건 때로, 적당한 거짓으로 이루어진 평화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불행의 모습이 돼버린다.

이해한다, 하지만 인정하지는 않는다.

동정한다, 하지만 그게 옳았다는 건 아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기대는 것도 없으며

갚을 것도 받아낼 것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원했듯이.


재밌는 게 뭔 줄 알아? 그렇게 몇 번이고 말하는 내게 사줬다는 좋은 옷, 비싼 수영복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자기만족에 불과하거든.

아이가 기억하는 건 따뜻한 위로, 다정한 말, 꽉 끌어안아줬던 품, 함께 놀았던 시간 같은 것들이야.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야.


졸업식에 아무도 오지 않아서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프다며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어.

우리가 항상 봤던 풍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