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과거의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하품이 난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통과해

by 한여름

글을 읽다가 숨이 막혀서 책을 잠시 덮었다.

이슬아는 아버지가 산업잠수사로 일했을 때의 감각과 괴로움을 구체적으로 썼다.

읽다보니 나까지 캄캄한 해저에 홀로 잠겨있는 기분이 들어 물 밖으로 나오고 싶어졌다.

그녀는 좋은 리스너일 것이다.

과연 나는 가족에게 좋은 대화 상대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과거의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하품이 난다.

좋은 일은 하나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들지 않고도 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동시에 아이에게 우는 소리를 하는 어른은 별로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라고?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가족을 '궁금한 타인'으로 관찰하는 시선이 귀하여 정신없이 읽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궁금한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그게 가족이라면 더더욱 궁금해지지가 않는다.

혹시 나만 그래?


그렇게 이슬아가 대화하고 관찰하며 기록한 가족들은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가난도 부끄러움도 사랑도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무엇이든 몸으로 통과시키며 정직하게 감내한다.

그게 왜 그렇게 눈물이 날까.

가난을, 사랑을, 머리로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셈이 꼬여 사랑은 하찮아지고 가난은 비참해지니까.

하지만 몸은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낸다.

그게 때로는 더 무겁고 부끄러울 수는 있지만 적어도 왜곡하지는 않아.

나는 그걸 늦게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라 몸을 쓰는 일에 여전히 서툴다.

몸을 썼어야 해.

변명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기로 한다.


아파트 헬스장에서 3km를 뛰고 걸었고 웨이트도 조금 했다.

그러는동안 창밖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운동을 끝내고 나왔는데도 여전했다.

우산은 없었지만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에 수건을 머리 위에 덮어쓰고 집까지 걸었다.

비에 조금 더 젖는 것 정도는 티도 안 나.

씻고 나서 개운한 기분으로 집안을 정돈하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