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을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2018년의 어떤 패배감

by 한여름

두 아이가 모두 있는 힘껏 울고 있을 때 나는 대게 다정한 엄마가 아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혹은 둘 다를 안아주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불행하게도, 불행하다는 기분은 너무 쉽게 찾아온다.


나는 육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내심, 나의 모자람, 나의 순발력, 나의 체력,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이면 내가 싸우고 있는 상대가 ‘그냥 내’가 아니라 ‘어렸을 때의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곧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절대 안아주지 않았다.

아마 안아줬다면 더 오래, 더 많이 울었을 테니 그런 냉정함이 빠른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엄마가 다정하게 안아주길 바랐다.

그걸 원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래서,


이렇게 두 아이가 모두 울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안아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언제라도, 늦기 전에 아이를 위로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실패했다.

내가 나와의 싸움에서 졌다는 뜻이다.

두 아이는 각자의 침대에서 실컷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이런 날, 나는 내가 안아주지 않은 것이 내 아이가 아니라 어린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오늘 내가 아이를 불행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면 패배감에 휩싸인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쉽고, 그래서 너무 초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얼마든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내가 패배했던 그 수많은 날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권력은 부모에게 있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부모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언제든지 부모를 용서한다.

엄마 때문에 아플 때도 엄마만을 부르며 운다.


나는 매일 100점 만점에 60점만 하자는 소박한 다짐을 하는 사람이다.

조선미 선생님이 엄마는 살아만 있어도 50점은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래 10점만 더 채우자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오늘은 50점이다.

진짜 살아만 있었다.

내일은, 그래 내일부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