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원하지 말고 사랑이 될 것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울었다.
원래 엄마는 눈물이 많았다.
특히 아빠 이야기를 진심으로 할 때면 꼭 울었다.
"하지만 그런 결혼도 결국 엄마의 선택이었어."
"난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거야!"
그 대답에 다시 한 번 "그것도 선택이야." 힘주어 말하자
엄마는 결국 "맞아."라고 인정했다.
"매일 그 집에서 나갈 생각만 하고 있었어.
사실 핸드백 하나만 들면 나올 수 있었어.
도와줄 사람도 있었고."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야."
"일 년 동안 그 생각으로 살았어.
아마 네 아빠도 느꼈을 거야."
"그랬겠지. 아빠가 왜 몰랐겠어."라고 대답하며
'심지어 나도 그걸 알았는데. 그리고 그게 어린시절 내 모든 우울의 근원이었는데.'라는 말은 삼켰다.
그 우울이 더 이상 내게 짐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전에 털어내 버린 짐이기 때문에.
어렸을 적 나는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당시 살았던 복도식 아파트에서 이 집 저 집 현관벨을 누르며 혹시 여기에 우리 엄마가 있느냐고 울면서 물으러 다닐만큼 불안도가 높은 아이였다.
뒤늦게 돌아온 엄마가 혼을 내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할 수 없어 앞뒤 없이 혼나면서도
당장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안도했다.
"하나만 잘못했으면 그걸 핑계 삼아서라도 나갔을 거야. 근데 그러지 않았어.
네 아빠, 나랑 너희들한테는 정말 끔찍한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잘했어."
"맞아, 그런 아빠의 됨됨이 때문에 계속 살았겠지. 아마 엄마도 어렴풋이 알았을 거야."
잘했어, 힘들었을 텐데 열심히 잘 살았어,라고 진심을 담아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기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엄마 역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온 본인의 삶이고,
더 이상 나는 그 삶에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이기 때문에.
엄마가 본인의 결혼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후회한다는 건 나와 동생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건 어떤 부정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냥, 엄마는 자식을 있는 힘껏 사랑해 주는 엄마가 아니었고
나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눈치를 보는 아이였다는 것.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부분을 숨기며 살았고 차마 묻지 못한 질문들과 그래서 듣지 못한 대답들 때문에 우울이 길었다.
"넌 나를 너무 많이 닮았어. 약하기 때문에 더 강한 척하는 거야.
약하기 때문에, 더 꼿꼿하게 서 있으려 하는 거야."
엄마는 말했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엄마, 나는 진짜 강해질 거라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를 진짜 닮은 건 그런 부분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점이다.
자식에게도 밑바닥을 박박 긁어내야만 사랑을 줄 수 있는 가뭄 같은 마음.
아무리 채워도 쉽게 메말라 버리는 이 가난한 마음을 가끔 어쩔 줄 모르겠다.
하지만 뒤이어 그럼에도 나를 살게 했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쯤 엄마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 한 마디였다는 걸 떠올렸고, 나는 오늘부터 매일, 사랑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이 여름, 사랑을 원하지 말고 사랑이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