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끔 만난다.
딱히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냥 다정한 사람.
지나가는 말 한마디, 별 것 아닌 행동 하나가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가볍게 손목이라도 붙들어주고 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손목이 무거웠다.
다정한 순간은 손쉽게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다정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 다정하려면 온 힘을 다하다 못해 애를 박박 써야 할 때도 있는데.
내게 다정이란 스스로를 깎아서 건네는 작은 조약돌 같았다.
그렇게 애를 써서 건네어보아도 상대는 손 위에서 장난처럼 굴리다가 저 멀리 던져버리곤 했으니까.
힘들게 다정해보았자 딱히 누가 알아주거나 고마워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얼마든지 무관심한 교사일 수 있었고, 그렇다 해도 누구도 모를 것이다.
내 아이에게도 매몰차고 엄격한 엄마일 수 있었고, 사실 그 편이 훨씬 쉬웠다.
그냥 존재만 하면 되니까.
그럼에도, 나는 항상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하는 걸 영영 부러워하며 사는 거다.
내 다정은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에서 부자연스럽게 나왔다.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이미 태생적으로 다정한 사람이 되기는 틀려먹은 것이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라도 기어코 다정해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게 다정은 자랑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큼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오직 나만이 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를 깎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내게도 조금 쉬워진 다정을 건네본다.
가볍고 쉽게, 하지만 꾸준히, 변함없이.
여전히 내 다정은 발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버리지만 거기까지는 내 몫이 아니다.
나의 몫은 그저 다정하게 건네는 것까지다.
그 다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렸던 내가 그런 다정을 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강가에 햇살을 받아 따뜻해지는 자갈들처럼 오래도록 온기로 머무르는 다정이 그리웠다.
나는 어렸던 내가 바랐던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