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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니전 마감 이틀 전 나도 부랴부랴 다녀왔다.
끝도 없이 늘어선 사람들로 뒤덮인 미술관의 풍경이 흡사 성수기 파도풀장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났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이 인파마저 호크니라 즐거웠던 거 같아. 다신 없을 진풍경이기도 했고.
/ 전시 막바지쯤, 다큐영상을 보다가 한껏 말랑말랑해져 있을 때, 왜였을까? 문득 지금 사는 집을 그리고 싶어졌다.
이 집을 그리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오히려 내심, 작년에 계약 연장이 아니라 그냥 이사를 갔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래저래 좋은 점도 많고, 이만한 곳도 없다 싶다가도 또 불쑥 새집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보금자리의 편안한 만큼의 늘어짐, 한소끔의 지리멸렬함, 조금씩 늘 불만족스러운 기분 같은 것들이... 전시를 보면서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바람에(?) 조금은 사랑스러워진 걸까?
매일 도착하고야 마는 나의 집이.
호크니는 좋은 순간에 좋아하는 걸 그린댔는데.
나는 좋은 순간에 이런 것들이 그리고 싶어 진다.
다들 이러고 살까?
이것저것 부족함을 느끼며, 더 예쁘고 세련 되게 살기를 바라며, 조금 더 윤택하기를 바라며, 사실 큰 변화 없이. 나름 애쓰며.
나름 애쓰다가. 문득 긴장했던 어깨에 힘이 풀리는 순간들을 간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