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사과 방식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다 보면 피해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태도에서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해 학생의 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 변호사로서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최근 진행한 상담에서도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가해 학생의 부모는 먼저 연락을 해왔다. 자신이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했는데 피해 학생 측에서 변호사를 통해 소통하라고 했기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화가 진행될수록 통화의 목적이 사과가 아닌, 자신들의 억울함을 강조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 아이도 많이 울고 힘들어합니다."
"법적으로 이렇게까지 갈 일인가요?"
"이쪽에서도 사과하려고 연락한 건데, 이렇게 변호사까지 끼고 갈 필요가 있었나요?"
이런 호소의 말을 듣다 보면, 도대체 누가 피해자인지 의문이 든다.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며,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는 너무도 흔하다. 이러한 태도가 학교폭력 절차에서 유리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 사건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가해자의 사과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의 부모는 사과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피해 학생 측에서 변호사를 통해 소통하라고 하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자 부모가 연락을 거부하는데 어떡하라구요!"
"그럼, 변호사님을 통해서 사과하면 되는건가요?"
"사과를 하려고 한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들은 결국 ‘우리는 사과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문제를 키웠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보이는 순간, 사과의 의미는 퇴색된다.
가해자의 부모는 종종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자체를 억울해하며 이를 막으려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의 부모는 학폭위를 진행하지 않도록 변호사인 저를 설득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가해자 측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사과를 하겠다는데도 꼭 이렇게까지 해야되냐'라며 되려 화를 냈다.
변호사의 조력을 선택한것은 감정적인 소모를 줄이고, 객관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정당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가해자 부모는 이를 불편해하며 변호사를 배제하고 직접 해결하려 했죠. 하지만 학교폭력 사건에서 감정적인 대립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위에 말씀드린 상황에서 이미 피해 학생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교육청에서도 학폭위 진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상황이어서 학폭위 뿐만이 아니라 형사, 민사 등 필요한 모든 보호조치를 다 하겠다는것이 피해자 부모의 결심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위와 같은 학폭위 저지라는 목적이 뚜렷한 형식적 사과 태도로 인해 피해 학생의 보호자는 감정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고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학생 개인의 사안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가 큰 피해를 입는 과정이고, 특히 부모의 감정소모가 매우 크다. 그렇게 되지말라고 만든 제도이건만... 현실은 그렇다. 이러한 과정을 그리고 법적인 절차에 관한 준비를 가정에 끌고 들어가 부모가 몇달씩 사건을 진행하다보며 무조건 지친다. 전부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이미 돈으로 헤아릴수 없는 피해를 받고 계셨다. 이러한 학교폭력 절차의 본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주변 변호사님이나 지인 등 제가 아끼고 신경쓰는 분들에게 문의가 오면 무조건 변호사 조력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무조건. 학폭위를 진행하는것은 변호사로서도 매우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도 더이상 더 많은 학폭 사건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영업이 아니라 진심이다.
한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