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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시간을 품은 회화나무 아래에서

by 한 율
사진: 한 율(Coreart)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 하나, 회화나무


그동안 찍은 사진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풍경 사진을 하나 소개한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바로 창덕궁의 회화나무이다. 사진 속의 회화나무는 2006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된 "창덕궁 회화나무군" 중 하나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군은 창덕궁 돈화문 근처 관람로에 나란히 심어진 8그루 고목들이다. 나무들의 수령은 약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회화나무군의 높이는 15~16m이고, 나무의 줄기는 직경 90~178cm에 이른다. 궐 입구에 위치한 회화나무는 삼공의 위계와 품격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궁궐의 예법 엿볼 수 있는 흔적으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계절의 빛깔을 품은 잎사귀들을 올려다본다. 회화나무는 계절을 묻힌 붓이 되어 하늘에 시간을 그린다. 창덕궁 담장 위로 드리운 회화나무의 가지에는 왕실의 시간의 아직 머물고 있었다.


사진: 한 율(Coreart)


궁궐의 시간을 품은 창덕궁 회화나무


창덕궁의 회화나무는 수령이 수백 년에 달하는 노목들로 기나긴 역사의 산증인이다. 시간이 만든 회화나무의 굵은 줄기 위로 구불구불하게 뻗어나간 가지들. 신묘한 나무의 모습은 궁 담장과 어우러지며 창덕궁의 운치를 더한다.


회화나무는 나쁜 기운인 액운을 물리치고, 길한 기운을 불러온다고 하여, 왕실을 지키는 수호수로 궁궐 근처에 식재되었다. 그래서 후원 일대, 인정전, 낙선재 주변 등 궁궐의 주요 공간에서 회화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듬직한 회화나무. 왕실을 지키며 말없이 세월을 품고 있는 회화나무. 고목의 자태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진: 한 율(Coreart)

청렴의 상징 회화나무의 특징


회화나무(Sophora japonica)는 동아시아가 원산지인 낙엽 활엽수로 콩과에 속한다. 회화나무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무렵, 작은 크림색 꽃송이를 피운다.


꽃봉오리와 씨앗은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며 혈관 건강과 지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뭇가지는 굵고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자란다. 잎은 가지에 비스듬히 기댄 형태로 조밀하게 달려 있다.


회화나무는 궁궐 이외의 관청, 서원 등지에도 식재되었다. 이는 회화나무가 액운을 물리치고, 길한 기운을 불러오는 '보호수'라는 상징 이외에도 유생들의 학업신장과 과거 급제를 뜻하는 '학자나무', '격조 높은 품격'과 '청렴'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율(Coreart)


수백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회화나무


구름이 실처럼 늘어진 채 흐르는 푸른 하늘. 구불구불한 회화나무의 가지가 그리는 선명한 윤곽. 이른 가을빛에 물든 나뭇잎. 노란빛과 초록빛 사이를 넘나드는 잎사귀들은 햇빛을 받으면 별처럼 반짝거린다.


회화나무는 수수하지만, 구불구불한 곡선 안에 강직함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 곳곳에 자리한 회화나무 고목들.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이테에 새겨진 계절들. 그 안에 담긴 시간은 어느덧 우리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창덕궁 회화나무 앞에 서자,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신엄한 기운을 내뿜는 회화나무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이 사진을 보는 분들에게도 회화나무의 길한 기운이 닿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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