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속에 머무는 계절들 사이로

by 한 율
사진: 한 율(Coreart)


인왕산 큰 바위에 드리운 초록


어느덧 가을의 초입인 9월. 9월 가을 운동회가 열린 날,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뜀박질을 했던 기억과 달리, 더위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요즘. 9월의 풍경은 어떤 계절을 품고 있을까? 계절감이 느껴지는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사진으로 담는 습관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풍경들을 소개해 본다.


첫 번째 사진은 인왕산을 하산하던 도중에 발견한 큰 바위이다. 예전에 요새와 같은 건물로 사용되었는지 동굴을 닮은 입구가 보인다. 초가을이지만, 지금처럼 초록이 무성한 시기에 찍었던 사진. 바위 위에는 나뭇잎들과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여름에서 가을로 지나가는 길목을 초록빛 식물들로 둘러싸인 바위가 막고 있었다.


사진: 한 율(Coreart)


무화과나무 화분


골목길을 거닐다 발견한 화분 하나. 쨍쨍한 햇살을 맞으며 초록빛 생기를 자랑하고 있는 식물에 호기심이 생겨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을 찍을 당시엔, 큼지막한 잎사귀 사이에 맺힌 작은 열매를 보고, 애호박인 줄 알았다. 그러나 글을 쓰며 찾아보았더니, 무화과나무라고 나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빛 무화과 열매와 달리, 무화과나무는 연둣빛 생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사진: 한 율(Coreart)


겨울 눈꽃 같은 이팝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팝꽃이 만개한 어느 날 밤에 찍었던 풍경. 밥알을 닮은 이팝나무 이팝꽃이 오밀조밀 눈꽃처럼 피어있다. 어둑한 밤과 대비되는 하얀 빛깔의 이팝꽃. 바람이 일자, 한 톨의 쌀처럼 꽃잎이 사뿐히 떨어진다.


사진: 한 율(Coreart)
사진: 한 율(Coreart)


담벼락에 핀 붉은 장미


골목길을 걷다가 마주한 붉은 장미. 예스러운 담장에 기대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핀 장미와 을씨년스럽게 시들어가고 있는 장미 사진을 함께 소개한다. 첫 번째 장미 사진은 의도적으로 채도를 낮추었고, 두 번째 장미는 사진의 초점을 장미 뒤의 폐가 건물에 두어 장미가 흐릿하게 나오도록 하였다.


이는 '꽃'의 상징인 생명의 유한성을 염두에 두고 찍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드나드는 골목가. 쉽게 눈에 들어오는 일상 속에서의 꽃.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과 시들어가는 장미꽃이 자아내는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삶은 흘러간다.


사진: 한 율(Coreart)


보랏빛 노을, 전신주 위 작은 새


어느 날 발견한 연보랏빛 노을. 노을이 지는 하늘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도중, 발견한 작은 새. 전신주 꼭대기의 전깃줄에 앉아 미동도 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새. 하늘빛이 변하는 짧은 순간, 노을로 물든 하늘을 작은 새와 함께 말없이 올려다본다.


사진: 한 율(Coreart)


데이지꽃을 닮은 개미취


연보랏빛 저녁노을을 품은 개미취. 데이지꽃과도 비슷한 생김새를 한 작은 꽃. 연한 자주색 꽃잎은 코스모스를 닮았다.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서 작은 꽃이 피어내는 소박한 정취에 발걸음을 멈춘다. 이번에 글을 쓰며 자그마한 꽃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개미취의 꽃말은 '기억'과 '추억'이다.


사진: 한 율(Coreart)


번지듯 스미는 노을


더위를 피해서 해 질 무렵 러닝을 하다, 무심코 찍은 사진 한 장. 다리 교각에 비친 노을빛. 물감이 번진 것처럼 회색빛 콘크리트 위 노을이 듬성듬성 찍혀 있다. 얼핏 보면 보도블록에 햇빛이 비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사진이다. 그렇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서가 사진의 햇살처럼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사진: 한 율(Coreart)

맑은 가을 하늘 붉게 타들어가는 황금빛 노을


어느 가을날, 인적이 드문 공터 앞에서 찍은 일몰.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순간. 황량한 공터를 메운 하늘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하늘을 점차 붉게 물들였다. 가을 들판의 벼들처럼 금빛으로 물든 구름. 빈 공간을 가득 메운 하늘 앞에서, 머릿속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생각들을 모두 잃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keyword
이전 26화창경궁과 창덕궁의 사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