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빗줄기가 지지직 거리는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시선을 어지럽히던 도중, 햇살이 구름 사이로 내리쬔다. 수채화 물감을 칠한 듯이 먹구름이 점차 노란빛으로 물들어간다. 뿌연 하늘 속에서 퍼지는 햇빛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색의 대비는 언제나 신선함을 준다. 마치 무지개가 뜬 것처럼 잠시 동안 하늘은 물들인 빛은 두터운 먹구름에 희미해졌다. 사진으로 찍은 지나가는 찰나의 풍경을 글로 다시 펼친다.
종탑의 꼭대기에 앉은 까마귀. 검은 까마귀는 연신 '까악, 까악' 소리를 내며 울었다. 까마귀가 날개를 활짝 펼쳐 들자, 그 크기가 독수리처럼 제법 커 보였다.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오비이락(烏飛梨落) 사자성어처럼 까마귀의 이미지는 같은 까마귀과인 까치와는 사뭇 다르다. 온몸이 새까만 모습도 그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본 까마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까마귀의 모습과 달랐다. 등산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까마귀와 바로 코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서로를 살펴보았다.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작게 맺혀있었다.
물안개가 피고 지는 산등성이 앞에 우뚝 서있는 독수리. 흐린 날씨로 인하여 한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던 산중의 풍경. 산바람과 함께 밀려온 오싹한 한기에 몸을 한껏 움츠리게 되었다. 종탑 상단에 있는 흰색의 독수리 조각상이 어둡게 느껴졌던 순간, 디지털카메라로 본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고, 조각상을 사진으로 담았다.
어두운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먼저 조도를 낮춘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 조도를 높여 조각상의 밝은 색이 두드러질 수 있도록 사진을 찍었다. 양쪽에 있는 독수리 조각상의 분위기가 서로 대비된다. 그럼에도 뿌연 하늘 속에 날고 있는 듯한 독수리의 모습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독수리가 벼락을 맞고, 추락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안개에 가려진 산과 도시. 안개가 낀 모습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안개가 걷히고 잠시 동안 드러나는 풍경과 다시 안개가 끼어 서서히 가리어진 풍경의 모습이 차례대로 지나간다. 안개가 낀 풍경은 맑은 하늘 탁 트인 풍경이 주는 뻥 뚫린 시야와 달리 관찰자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단풍이 진 겨울 산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생각을 멈추고, 안개가 낀 상태로 궁금증을 자리에 남겨두었다.
구화.
2025년 12월 11일
한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