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사라졌다. 갑작스레 친구는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짧은 몇 마디를 남겨줄 정도로 세상은 감상적이지 않았다. 그건 영화 속에서나 기대해 볼 법한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시간은 친구의 편에 섰다. 그래서 시간은 망연자실한 내게 군데군데 때가 탄 작은 지우개를 건네고 지나갔다. 말 없는 시간은 그렇게 점차 세상으로부터 친구의 흔적을 거두어들였다.
파도, 사진: 한 율(코레아트) 시곗바늘 소리가 선명해지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지우개를 들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지울 수 있다면 바로 지우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결국 희미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 속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부여잡고 살 것인가.’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를 그릴수록 나 역시 시간의 편에 설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모서리가 닳고 꼬질꼬질한 지우개를 집어 들었다.
담담해지자. 그동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해 보아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몇이나 온전히 기억 속에 살아 숨 쉴까?' 그리고 거기에서 또다시 여과기에 걸러진 것처럼 몇 명이나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가. 위와 마찬가지로 나는 얼마나 타인의 삶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가. 갑자기 내가 기억 속에서 나타나 안부를 묻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쓰러질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살아있음에도 기억 속에 묻혀있는 존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물리적인 존재조차 사라졌는데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하였다. 나 역시 시간에 닳아가는 존재인 것처럼 그저 시간에 씻긴 기억들이 점차 뭉툭해지길 기다리면 된다. 손에 꼭 쥐고 있는 지우개처럼 말이다. 친구는 더욱이 TV, 인터넷 등의 각종 매체에 등장하여 회자되는 유명인이 아니었다. 그저 지우개로 지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어느 날 인터넷을 보다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에 가슴 철렁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미 기억이 흐릿해진 부분을 찾아 지우기 시작하면 아직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부분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 생각하여 서둘러 기억을 더듬었다. 불투명한 기억의 경계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렁이는 친구의 모습을 앞에 두고 그 기억에 대한 간단한 질문 몇 개를 던져 보면 된다. 머뭇거리며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면 지우면 된다.
그렇게 지우개를 들고 친구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동안 기억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지우려니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아 멈칫하였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우개를 움직이며 천천히 지우기 시작하였다. 한번 지우고 나니 점차 속도가 붙어 수월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지랑이처럼 기억 곳곳에 일렁이고 있는 친구를 찾아 지우기 시작했다. 오히려 친구를 기억 속에서 다 지우기 전에 조그만 지우개가 너무 빨리 닳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친구가 점점 기억 속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임이 분명하지만 시원섭섭하였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났을지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기억의 시간과 실제 시간이 같이 흐르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기억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다행히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직 선명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새벽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일은 월요일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친구가 예고 없이 떠나간 것처럼 나 역시 추억에 사로잡혀 있을 만한 감상적인 여유가 없었다. 세상과 시간은 개개인의 사연을 검토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없이 지우개를 들고 뛰어다녔다. 처음처럼 망설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질문을 생각함과 동시에 지우개를 옮겼다. 친구는 선명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물에 번진 수채화 물감처럼 흐릿해졌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밤의 농도 역시 점차 옅어지고 있음을 좁은 방 안 공기의 흐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부분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친구의 모습과 마주하고 있다. 친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작게 보였다. 그때도 키가 컸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보니 친구는 그저 꼬마 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의 주위에는 지우개 똥처럼 마음 한편에 수북하게 쌓인 기억의 파편이 어지럽게 휘날렸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그 친구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임을 알 수 있었다. 담담하게 생각을 전하자. 질문은 그다지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생각한 대로 말할 테니까.
"이제 난 널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어."
'알고 있어.’
"그래도 날 너무 원망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괜찮아.’
"아무 말 없이 떠나갔으니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겨둘 말은 준비해두지 않았지?"
...
예상했던 대로 침묵이 짧게 흘렀다. 이것 역시 모두 나의 생각이 지어낸 말들이라고 생각하며 지우개로 마지막 모습을 지웠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지우개를 손에 떨어뜨린 시각은 새벽 네 시 무렵.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책상에 엎드린 채 잠에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휴일, 휴대폰의 알림이 울렸다.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방 안의 시계보다 나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락 올 곳도 딱히 없는데’라고 이상하게 여기며 굼뜬 동작으로 느릿느릿 휴대폰을 켠 뒤 화면을 쳐다보았다. 블라인드를 내려 대낮에도 어두운 방 안에 환한 화면이 유독 눈부시게 빛났다. 눈을 찌푸리며 쳐다본 화면 안에는 블랙프라이데이 때와 버금가는 할인 정보가 떠있었다. ‘모처럼 제대로 된 핫딜이 떴네.’ 더군다나 몇 달 동안 눈여겨본 상품이었다. 이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고민하는 순간 품절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재빨리 사이트에 로그인하였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은 사이트라 비밀번호를 까먹은 것이다. 다행히 비밀번호 찾기 질문을 설정해두었다. 휴대폰 인증으로 비밀번호를 찾는 것보다 비교적 시간이 적게 걸리니 잘하면 품절되기 전에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다급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비밀번호 찾기 질문이 떴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다행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맞는 대답을 입력할 수 없었다. 오래되었거나 가까이 지낸 친구의 이름을 입력한 뒤 마지막으로 최근에 같이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름을 입력하였다. 그런데도 번번이 일치하지 않는 대답이라며 실패하였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눈물이 흘렀다.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하여 대낮에 엉엉 소리쳐 울었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눈물로 희뿌옇게 번진 시야가 따갑고 아리다. 그렇다. 정말 바보처럼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지우개 똥처럼 여기저기에 휘날리던 기억의 파편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