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시우는 책상 위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아메리카노는 거의 식어 있었지만, 마시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끝내고 난 후의 정적은 늘 이상했다.
말을 멈춘 공간이 더 크게 느껴졌고, 고요한 방 안에서 되려 생각이 소란스러웠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고래책방님, 오늘도… 오셨네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린 순간,
시우는 스스로 놀랐다.
수백 명의 팬이 있는 방송에서,
익숙한 닉네임 하나를 기다리는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이미 마음 한 켠이 한 사람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래책방.
그 이름은 익숙함을 넘어,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되었다.
그날 그가 남긴 댓글.
“당신의 말 한 줄이,
다시 나를 쓰게 했어요.”
그 말은 마치 노래의 가사처럼 오래 머물렀다.
“다시 나를 쓰게 했다”는 말.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너무 따뜻해서,
시우는 그날 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그 시각, 은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나를 쓰게 했다.’
자신이 쓴 그 댓글을 그가 읽었고,
그 말에 대답하듯 한 마디를 더 남겼다.
“오늘도… 오셨네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실시간 댓글창을 넘기며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예전엔 그저 듣기만 했던 방송.
이제는… 함께 나누는 대화가 되었다.
은하는 다음날 출근길에 작은 습관을 들였다.
시우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는 것.
그의 손글씨 같은 짧은 메모,
혹은 작업 중인 가사의 일부를 올리는 공간이었다.
[오늘의 메모]
“우연이 반복되면, 그것도 인연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 글을 읽고, 은하는 버스 안에서 한참을 창밖을 바라봤다.
시우는 알고 있을까.
그 우연의 반복 속, 누군가는 지금…
자신을 향해 천천히 마음을 내어주고 있다는 걸.
그날 밤.
시우는 연습 중인 곡을 공개했다.
‘작업 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짧은 영상에는
피아노 연주 위에 간단한 멜로디가 얹혀 있었다.
그 곡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됐다.
[“누군가의 말 한 줄”]
그걸 본 은하는 천천히 키보드를 열었다.
“그 말… 제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제 것이기를 바라요.”
댓글을 쓰다, 그녀는 멈췄다.
그 문장이 너무 솔직한 것 같아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결국,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우는 점점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방송에서 시우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요, 어떤 사람의 마음이 멀리 있어도
그게 어떻게든 닿을 수 있다는 걸 믿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도 노래합니다.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그 밤,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한 발 가까워졌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점점… 서로에게 준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