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선을 마주한 뒤,
오히려 마음이 움츠러드는 순간이 있다.
그날 북카페 행사장에서
시우와 눈이 마주쳤던 그 짧은 순간 이후,
정은하의 마음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한 눈빛으로 웃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미소 하나에, 그녀는 깊은 파문을 느꼈다.
며칠 동안 은하는 ‘고래책방’이라는 닉네임으로 아무런 댓글도 남기지 않았다.
아예 방송도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익명의 세계에서,
조용히 위로만 받고 있던 자신이
현실 속에 끌려나온 기분이었다.
한시우.
그의 말, 그의 노래,
그의 눈빛은 더없이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이
어느 순간부터는 무섭게 느껴졌다.
그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를 숨기고 싶어졌다.
“요즘 왜 댓글 안 달아요?”
회사 카페에서 다시 만난 채영이 물었다.
은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쉬는 중이야.”
“시우 님… 찾던데요. 방송에서.
‘자주 보이던 분이 안 보이면 궁금해진다’고.”
그 말에,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커피잔 안에 어지럽게 떠도는 거품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뭐가요?”
“그 사람이… 날 궁금해하게 만드는 거.
그냥… 조용히 구석에 머무는 사람이길 바랐는데.”
그날 밤, 시우는 평소보다 짧은 라이브 방송을 열었다.
화면에는 그늘이 살짝 진 얼굴,
말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고요한 슬픔이 느껴졌다.
“가끔은요,
멀리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죠.
가까워지면 상처날까 봐,
익숙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 말은 누군가를 향한 것 같았고,
은하는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날 밤, 은하는 처음으로 혼잣말을 적어 내려갔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그 감정을 이름 붙이는 순간이 무서워요.”
고래책방.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버린 닉네임이 되었다.
그 이름이 점점
그녀에게 방패가 아닌 얼굴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더 가까워지면,
나는 그 다정함에 무너질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나를 숨기고 싶은 거라고.
그리고 그날 밤,
시우는 그 익숙한 닉네임이
또 한 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심코 중얼거렸다.
“…괜찮으신 거죠?”
말은 화면 너머를 향했지만,
그 마음은 분명,
누군가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