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다시 말 걸어도 괜찮을까?

by 카르페디엠

며칠째 댓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정은하는 라이브 방송을 매일처럼 틀었지만,
고래책방이라는 이름으로는 한 글자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듣기만 했다.
음악이 흐르고,
시우가 말하고,
사람들이 환호하고, 웃고, 위로받는 시간.


그 안에서 은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어느 날, 시우가 방송을 마치기 직전
짧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언젠가는…
다시 말 걸어줘요.
그냥, 말 한 마디면 괜찮아요.”


그 말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았다.

그는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다음 날, 퇴근길.

은하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멍해 보였다.


‘그냥, 한 줄만 써볼까.’
수없이 망설인 끝에,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를 열었다.


[LIVE] 하늘담은 목소리 – 오늘은 조금 다른 노래


시우는 평소와 달리 기타를 들고 있었다.
손끝이 천천히 멜로디를 짚었고,
그는 노래 대신 조용한 멘트로 시작했다.

“어떤 마음은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채죠.
그런데 말이라는 건,
결국 닿기 위한 용기 같아요.”


은하는 숨을 들이켰다.


‘지금 아니면,
나는 영영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


그녀는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고래책방입니다.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그래도 계속, 잘 듣고 있었어요.


손끝이 떨렸지만,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시우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냥… 그 한 줄이면 충분해요.”


그 순간, 은하의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기다림은 말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날 밤, 은하는 노트 앱을 켰다.
자신이 쓴 글 일부를 다시 열어본다.
한 줄 한 줄이
더는 혼자의 기록 같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썼다.

“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건네도 괜찮을까.”




다음 날.
출판사 회의실.

채영은 회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은하에게 슬쩍 물었다.

“언니, 혹시… 고래책방님, 언니 맞아요?”


은하는 놀란 눈으로 채영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해?”
“느낌이에요.
말투가 너무 비슷하거든요.”


은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꼭 다문 채 고개를 돌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들켰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각,
다른 공간에서 또 한 사람.

‘서린’은 자신의 브이로그에 한 클립을 올리고 있었다.

“요즘 ‘하늘담은 목소리’에서 고래책방 찾는 거 봤어요?
나도 은근히 궁금하던 참인데~
누굴까? 팬들 중에서도 말 예쁘기로 유명하던데.”


그녀의 영상에는
벌써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혹시 채영 언니 아님?”
“그분이랑 시우 님, 느낌 통하던데.”
“고래책방 정체 밝혀지는 거 실화?”


말이, 감정이,
조금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은하를 벗어나고 있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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