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은하는 시우의 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봤다.
댓글은 남기지 않았다.
대신, 읽고 또 읽었다.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졌어요.
그 사람이 멈춰 있어도,
내가 다가가도 괜찮을까요.”
그 글은 마치
‘괜찮다고 말해달라’는 부탁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은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현실의 나는 그에게 어떤 모습일까.
30대 후반의 조용한 에디터.
책을 좋아하고, 말이 없고, 때때로 혼자 밥을 먹는 사람.
그와 닿을 수 있을까.
그를 현실 속에서 마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아.”
감정이 앞서고 있었고,
현실은 그 감정을 이해해줄 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시우는 멈춰 있었다.
은하의 이름이 더 이상 댓글창에 뜨지 않았어도,
그는 매 방송 전,
가장 먼저 고래책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면
가장 먼저, 그녀의 부재를 느꼈다.
“괜찮아요. 말하지 않아도.
그냥… 제 자리에 있을게요.”
그는 더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무언의 침묵을 지키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은하는 여전히 매일 방송을 들었다.
댓글은 달지 않았고,
메일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쓰던 글의 문장들을
조금씩 시우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는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그날 밤.
시우는 방송 말미에 짧은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은, 같은 책을 읽고 있어도
서로 다른 페이지에 있을 수 있죠.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이 그 페이지를 넘기고 싶을 때까지…
저는 기다릴게요.”
은하는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그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의 기다림이
그녀의 두려움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달을 바라보았다.
다른 창문에서, 다른 침묵으로.
그리고 아주 느리게,
같은 페이지를 향해
서로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