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다시, 너에게 말을 건다

by 카르페디엠

은하는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노트북을 켰다.


그녀는 최근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댓글도, 메일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시우의 모든 말에, 매일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그 기다림이 너무 따뜻해서
그녀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날 은하는
자신이 오래 붙잡아 온 짧은 소설의 일부를
시우의 채널 메일로 보냈다.


수신자 칸에
제 이름 대신 ‘고래책방’이라고만 적고,
서두 없는 글을 그대로 복사해 붙였다.


그것은
‘그를 향해 쓰인 글’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에게 닿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어떤 말은,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도착하려 했다는 마음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무 대답도 바꾸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너에게 말을 걸기로 한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은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그가 읽게 될까?’
‘그가 이 글이 나라는 걸 알 수 있을까?’


아니,
알아채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이 마음이 어디쯤엔가 닿을 수만 있다면.


며칠 후.


시우는 작업실에서 태진과 음악 편집을 하다
메일함을 열었다.


고래책방.
익숙한 이름이 다시 화면에 떠 있었다.


그는 말없이 클릭하고
긴 문장을 읽었다.


소설 형식의 글.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고,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용히 말을 거는 이야기.


시우는 그 글을 다 읽은 뒤
말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누르지 않은 채
손을 조용히 올려 두었다.


그리고 입술을 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건… 고백이구나.”
“누군가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단어를 꺼낸 방식의,
가장 조용한 고백.”

그날 밤.


시우는 방송을 하지 않았다.
대신 커뮤니티에 단 한 줄의 글을 올렸다.

“오늘은…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는 내일 들려드릴게요.”


은하는 그 글을 보고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내 마음을, 당신이 알아준 것 같아서.”

그것은,
정말 오랜만에 꺼낸
은하의 ‘직접적인 문장’이었다.


고래책방이 아닌,
정은하라는 사람의 감정으로 쓴 한 줄.


그리고 그날 밤,
시우는 다음 곡의 제목을 노트에 적었다.

[다시, 너에게 말을 건다]


그건
누군가의 글에서 시작된 곡이자,
이제 그의 진심이 되어 돌아가는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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