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우리가 서로를 처음 부른 날

by 카르페디엠

메일함에 도착한 단 하나의 음성파일.


시우는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한참을 망설였다.


파일 제목도, 본문 내용도 없이
단지 익숙한 발신자명, '고래책방'만이 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이어폰을 꽂고
숨을 고르고,
그 짧은 음성을 다시 들었다.

“이번엔… 제가 먼저 말을 걸게요.”


불과 4초 남짓한 한 줄.
그 한 마디가
그 어떤 멜로디보다 선명하게 그의 마음에 꽂혔다.


그날 밤,
시우는 작은 스튜디오 한 켠에서
새로 만든 곡을 연습했다.


그는 더 이상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가사를 정리했다.

그 사람의 진짜 이름을,
이제는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은하가 일하는 출판사로
한 통의 소포가 도착했다.

보내는 사람: 하늘담은목소리

그녀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자
하얀 LP 박스와 작은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메모지에는 단 하나의 문장.

“정은하 님께,
이 노래는 당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며 시작합니다.”


은하는 숨을 멈춘 채
LP를 재생했다.

지직— 하고 노이즈가 흐른 후
기타 전주가 시작되었고,
이어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은하야.” ♪


단 한 번,
처음으로.

그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아닌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정. 은. 하.


은하는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감춰 두었던 이름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불린 순간
무너지듯 울컥해졌다.


처음이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건.


그날 밤, 은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오래 쓰던 워드 파일을 열었다.

그녀는 조용히, 타이핑했다.

“시우 씨.”


그 이름을 처음 불러본 것이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누군가를 ‘세상 속의 하나’가 아닌
‘내 마음 안의 단 한 사람’으로
기억하겠다는 고백과도 같았다.



그날,
그녀는 마침내
‘고래책방’이라는 닉네임 없이
메일을 보냈다.

“시우 씨,
제 이름을 그렇게 따뜻하게 불러줘서 고마워요.
저도,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어요.”


그녀는 마침표 대신
작은 숨결 같은 이모티콘 하나만 남겼다.
그리고 그 짧은 메일을 보내며,
살며시 웃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하나의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로 향하는 문 앞에 선 듯한 순간이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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