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용기의 고대 요새, 무너지는 방벽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팟캐스트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브런치북
하오빛은 며칠 동안 부쩍 힘없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하오빛 라디오 사연 게시판에는 ‘새로운 도전을 망설인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작은 성공에도 움츠러들고, 새로운 시도 앞에서 쉬이 포기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만연했다. ‘소심함’이라는 형용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오빛은 라디오를 통해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의도적으로 심연으로 의식을 던졌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물결치듯 변하더니, 이내 차갑고 거친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눈을 뜨자, 하오빛은 거대한 ‘용기의 고대 요새’ 앞에 서 있었다.
요새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듯 웅장했지만, 동시에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높이 솟은 성벽 곳곳에는 거대한 균열이 가 있었고, 일부는 이미 무너져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요새 주변은 드넓은 황무지였는데,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회피의 늪’이 검은 진흙처럼 꿀렁이고 있었다. 늪에서는 끈적하고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고, 그 안에는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고 가라앉은 수많은 꿈들의 잔해가 희미하게 빛났다.
“이곳이 용기의 요새라고?” 하오빛은 믿을 수 없었다. 이토록 굳건해야 할 ‘용기’의 공간이 이토록 황폐하다니.
그때, 요새의 무너진 벽 사이에서 희미한 울림이 들려왔다. “위험해… 하지 마… 실패할 거야….” 그것은 과거의 실패와 타인의 비난이 응축된 ‘좌절의 속삭임’이었다.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요새의 균열에서 칙칙한 회색빛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갯속에서는 불안정한 형태로 꿈틀거리는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소심함의 벽령(壁靈)’이었다. 형체는 불분명했지만, 그들은 요새의 무너진 벽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듯 보였다. 벽령들은 날카로운 파편 팔을 휘두르며 하오빛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공격은 물리적이라기보다, 하오빛의 마음속에 의심과 망설임을 심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했다.
“젠장, 또 이거야!”
하오빛은 몸을 피하려 했지만, ‘소심함의 벽령’들은 집요하게 그를 쫓아왔다. 그들이 휘두르는 팔에 스칠 때마다, 하오빛의 머릿속에는 ‘너는 능력이 없어’, ‘어차피 안 될 일이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는 손에 쥐여 있던 ‘끈기의 나침반’을 떠올렸다. 나침반의 바늘은 맹렬하게 흔들렸지만, 요새의 가장 높은 곳, 아직 무너지지 않은 망루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이 이 요새의 핵심일 터였다. 하오빛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끈기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황무지 곳곳에 펼쳐진 ‘회피의 늪’은 그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고, ‘소심함의 벽령’들은 끊임없이 그를 방해했다. 그는 ‘공감의 수정 방패’를 사용해 벽령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방패에 닿은 벽령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그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하오빛은 필사적으로 뛰어올랐다. 무너진 돌무더기를 밟고, 균열이 간 벽을 타고 올랐다. 매 순간 균형을 잃고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한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환각의 속삭임’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포기해! 넌 할 수 없어!’.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망루의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돌 제단이 있었는데, 제단 중앙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불씨’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불씨는 마치 곧 꺼질 듯 미약했지만, 그 속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던 수많은 위대한 용기들의 흔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용기의 불씨’였다. 이 불씨가 꺼지면, 현실의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도전도 하지 못하고 영원히 무기력해질 것이라는 섬뜩한 확신이 들었다.
그 순간, ‘소심함의 벽령’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망루를 에워쌌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 방패로는 막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씨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니, 내가 용기다!”
하오빛은 외쳤다.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도전의 정신’과 ‘불굴의 의지’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끈기의 나침반’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용기의 불씨’를 감쌌다. 그의 심장 박동이 불씨와 함께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용기의 불씨’와 결합하자, 불씨는 순식간에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불꽃은 마치 거대한 방벽처럼 하오빛과 망루를 감쌌다. ‘소심함의 벽령’들이 불꽃에 닿자,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본질인 ‘망설임’이 ‘용기’의 뜨거움 앞에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불꽃은 요새 전체를 감싸며, 무너졌던 벽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균열은 메워지고, ‘회피의 늪’은 순식간에 황톳빛 땅으로 변했다. 요새는 이전보다 훨씬 더 굳건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우뚝 섰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좌절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해보자!’, ‘할 수 있어!’ 하는 희미한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현실로 돌아온 하오빛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후끈거렸지만, 마음은 더없이 가볍고 확신으로 가득 찼다.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며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지난 며칠 동안 그를 짓눌렀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확신과 울림이 실렸다. 라디오 사연 게시판에는 놀랍게도 새로운 도전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오빛은 손바닥을 펼쳤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치 뜨거운 불꽃을 쥐고 있었던 듯한 아릿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용기’는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스스로 불을 지피는 가장 강력한 형용사임을. 그리고 그는 그 불꽃을 지키는 '형용사의 지배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