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슬픔의 눈물 호수, 침잠하는 기억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팟캐스트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브런치북
하오빛은 며칠 전 라디오에서 받은 사연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 청취자는 오랫동안 앓던 반려견과의 이별을 담담하게 털어놓았지만, 그 행간에는 깊고 깊은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지만,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가슴 한편이 묵직했다.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 퍼진 우울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여가는 상실감들이 하오빛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슬픔’이라는 형용사가 마치 잔잔한 비처럼 세상에 내리고 있는 듯했다.
그날 밤, 하오빛은 지친 몸을 뉘었다. 잠들기 직전, 그는 그 청취자의 슬픔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었다. 의식이 아득해지자,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감각과 함께 차가운 물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눈을 뜨자, 하오빛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방은 잿빛 안개에 잠겨 있었고, 호수의 수면은 검고 잔잔했지만, 그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무게가 느껴졌다. 호수 위로는 끊임없이 가늘고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억눌린 눈물이 모여 이 거대한 ‘슬픔의 눈물 호수’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호수 저편에서는 희미하게나마 형체가 보이는 섬들이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들의 ‘잊혀진 행복한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섬들은 빗물에 서서히 잠겨가고 있었고, 일부 섬은 이미 물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이대로 두면, 사람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슬픔 속에 영원히 침잠하여 회복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호수 깊은 곳에서 섬뜩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놓아줘… 잊는 게 편해….” 그것은 깊은 상실감에 젖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망각의 속삭임’이었다. 속삭임은 점차 커지더니, 호수 수면이 불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에서 검고 길쭉한 그림자들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상실의 촉수’였다. 물뱀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촉수들은 호수 위를 떠다니는 기억의 섬들을 휘감으며 물속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촉수들은 끈적한 슬픔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하오빛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 나왔다. 촉수에 닿으면 그의 마음속 가장 소중한 기억마저 희미해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안 돼! 이 기억들은 사라져선 안 돼!”
하오빛은 몸을 피하려 했지만, 호수 위에는 기댈 곳이 없었다. 그는 ‘끈기의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호수 중앙의 가장 큰 기억의 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섬에는 유독 강렬한 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청취자의 반려견과의 가장 소중한 기억일 터였다.
그는 ‘공감의 수정 방패’를 사용해 ‘상실의 촉수’를 막아냈다. 방패에 닿은 촉수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호수 전체에서 솟아나는 촉수들의 수는 압도적이었다. 하오빛은 필사적으로 기억의 섬들 사이를 뛰어넘으며 가장 큰 섬을 향해 나아갔다. 발을 헛디딜 때마다 차가운 호수 물이 발목을 감싸며 ‘망각의 속삭임’이 더욱 강렬하게 들려왔다. ‘잊어버려… 고통스러워….’
마침내 가장 큰 기억의 섬에 도착했을 때, 섬은 이미 절반 이상 물에 잠겨 있었다. ‘상실의 촉수’들은 섬을 맹렬하게 휘감아 물속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섬 위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청취자와 반려견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하오빛은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슬픔을 잠시 잊게 했다. 그는 이 기억을 지켜야만 했다. 그는 라디오에서 수없이 강조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기억은 살아있는 힘이 된다.’ ‘슬픔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내면에서 ‘치유의 염원’이 강렬하게 솟아났다.
그 염원이 그의 손에 모이자, 작고 투명한 ‘정화의 눈물방울’이 나타났다. 이것은 ‘슬픔’을 정화하고 ‘기억’을 보존하는 이데아 아이템이었다. 하오빛은 ‘정화의 눈물방울’을 ‘상실의 촉수’에 던졌다. 방울이 촉수에 닿자, 촉수들은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정화의 눈물방울’을 호수 전체로 흩뿌렸다. 방울들이 호수 수면에 닿자, 검게 꿀렁이던 호수 물은 점차 투명해지고 맑아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내리던 비도 멈추고, 잿빛 안개는 서서히 걷혔다. 물속으로 침잠했던 기억의 섬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들의 빛은 이전보다 더욱 밝고 선명해졌다. 호수 위로는 따뜻한 햇살이 비쳤고, 잔잔한 물결이 희미한 노래처럼 일렁였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하오빛은 침대에 누워 심호흡을 했다. 몸이 가벼웠고, 마음은 평온했다. 다음 날 아침, 하오빛은 라디오 게시판을 확인했다. 어제 사연을 보냈던 청취자가 새로운 글을 올렸다. 그는 밤새도록 반려견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되짚어보았고, 이제는 슬픔 속에서도 따뜻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글 마지막에는 “이 슬픔 또한 제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이 기억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하오빛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노력이 또 한 번 현실에 긍정적인 파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슬픔’이라는 형용사가 단순히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치유와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그 자신이, 그리고 청취자들이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데아의 저편에서 하오빛의 임무는 계속될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형용사의 공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