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나태의 잠자는 도시, 멈춰버린 시간
하오빛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의욕 상실’과 ‘무기력증’에 대한 사연을 자주 접했다.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시작하지 못하고, 작은 움직임조차 버거워하며 하루를 흘려보냈다. 꿈과 목표를 이야기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사회 전체에 보이지 않는 무기력함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듯했다. ‘나태’라는 형용사가 마치 끈적한 거미줄처럼 시간을 멈추게 하는 듯했다.
그날 밤, 하오빛은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러한 침체된 분위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도시였다.
그는 거대한 ‘나태의 잠자는 도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도시는 화려했지만, 모든 것이 먼지에 덮여 있었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건물들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지만, 어딘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시계탑의 시계는 특정 시간에 멈춰 있었고, 공중에는 먼지처럼 무거운 정체된 공기가 가득했다. 이곳이 바로 ‘나태의 잠자는 도시’ 임을 하오빛은 직감했다. 인간의 모든 게으름과 무관심이 응축되어, 시간마저 정지시킨 공간이었다.
도시 곳곳에는 잠들어 있는 듯한 사람들의 형상들이 보였다. 그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거나, 길가에 기대어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멈춰버린 인형 같았다. 그들의 몸에서 희미한 회색빛 기운이 피어올라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도시의 깊은 곳에서 음침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편안히 쉬어….” 그것은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하는 ‘무관심의 속삭임’이었다. 속삭임은 점차 커지더니, 도시를 뒤덮은 회색빛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기운 속에서 흐릿한 형체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무기력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들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형상을 휘감으며 그들의 남은 활력마저 빨아들였다. 그림자들이 내뿜는 냉기는 하오빛의 마음까지도 무겁게 만들려 했다. 그들이 내뱉는 속삭임은 그의 가장 작은 의욕마저 꺾으려 했다. ‘노력해 봤자 소용없어. 그냥 가만히 있어.’
하오빛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알 수 없는 끈적한 기운이 그의 발목을 잡는 듯했다. 그는 ‘끈기의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맹렬하게 흔들렸지만, 도시의 가장 높은 곳, 멈춰버린 시계탑의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이 이 도시의 핵심, ‘시간의 심장’ 일 터였다.
그는 ‘공감의 수정 방패’를 사용해 그림자들을 막으려 했다. 방패는 그림자들을 밀어냈지만, 그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고, 끈적한 기운은 방패의 빛마저 흐리게 할 듯했다. 하오빛은 필사적으로 그림자들을 헤치고 시계탑을 향해 나아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멈춰버린 공기가 그를 짓눌렀고, ‘무관심의 속삭임’이 더욱 강렬하게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뭘 하려는 거야? 그냥 자! 모든 게 다 귀찮잖아!’
시계탑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거대한 시계의 태엽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 먼지와 거미줄이 뒤덮인 태엽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기를 멈춘 것처럼 보였다. ‘무기력의 그림자’들이 하오빛을 완전히 에워쌌다. 사방이 짙은 회색빛 기운과 멈춰버린 시간의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의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처럼 내려앉았다.
그 순간, 하오빛은 눈을 질끈 감았다. 라디오에서 수없이 외쳤던 말들을 떠올렸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든다.’ ‘움직여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활발한 추진력’과 ‘성취의 의지’라는 단단한 관념이 솟아났다.
그 의지가 그의 손에 모이자, 작고 밝은 ‘깨어남의 종’이 나타났다. 이것은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무기력에 잠식된 이들을 깨우는 이데아 아이템이었다. 하오빛은 망설이지 않고 ‘깨어남의 종’을 들어 시계탑의 멈춰버린 태엽을 향해 힘껏 흔들었다.
‘쨍그랑!’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자, 시계탑의 태엽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흩날리고, 멈춰 있던 시곗바늘이 힘차게 움직였다. 종소리가 도시 전체에 퍼져나가자, ‘무기력의 그림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본질인 ‘나태’가 ‘깨어남’의 소리 앞에서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도시는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사람들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건물들은 다시 빛을 발하고, 거리에서는 희미하게나마 활기찬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탑의 시계는 다시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도시 전체에 활기찬 에너지가 감돌았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하오빛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몸은 가벼웠고,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방송 대본을 준비하며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훨씬 강한 추진력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실려 있었다. 방송 후, 라디오 게시판에는 놀랍게도 ‘드디어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미뤄왔던 일을 드디어 해냈다’는 사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오빛은 미소 지었다. 이데아의 저편에서의 싸움은 그에게 ‘나태’라는 형용사가 얼마나 삶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독인지. 하지만 동시에, ‘깨어남’과 ‘추진력’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이제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형용사의 지배자'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데아의 저편에서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관념의 공간이 하오빛을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