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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공간으로 인간을 읽다 - 유현준의 공간인간

온라인 시대, 오프라인이 더 그립다.

by Oh haoh 오하오

다른 것에서 공통점을 찾는 일은 늘 즐겁다. 하나의 퍼즐 같다.


내가 좋아하는 석학들 ―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재래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등 ― 은 이런 능력이 탁월하다. 국내에도 그런 사람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건축가 유현준이다.


유현준은 많은 것을 공간과 연결시킨다. 그의 책은 인간 문명을 공간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규칙이 있다. 세상을 설명하는 법칙이 여러 개라면, 그중 간단한 것이 더 진리에 가깝다는 뜻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로 설명하며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라고까지 했다.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유현준은 공간으로 인간을 설명한다. 그의 관점은 흥미롭고 설득력 있다. 공간의 발전 방향은 더 크게, 더 밀도 있게, 더 실내로 향한다. 그리고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권력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 무대 앞에 서서 말하는 사람, 긴 테이블의 짧은 변에 앉은 사람이 권력자다.


나는 그의 책을 통해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교실이나 아이의 공부방을 꾸밀 때도 그 시선을 적용한다. 책상의 위치나 물건들의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재래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말했듯 생활환경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오프라인 공간은 인간의 삶을 만든다.

이 책은 공간을 진화론적으로 읽는 시도이기도 하다.


120쪽, 권력의 제1원칙 ―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

235쪽, 좋은 건축가 ― 대지의 제약 조건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내가 선택한 두 문장은 위와 같다. 예전에는 사람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단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집에서 시선을 모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무한한 공간, 가상의 공간에 살고 있다. 이 글 역시 인터넷이 닿는 어디에서든 읽힐 수 있다. 작은 스마트폰 안에 모든 공간이 담겨 있다. 시선이 모이는 곳이 권력이라면, 이제 누구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공간 위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돈만 있으면 좋은 공간을 대여할 수 있고, 그 순간을 SNS에 오래 남길 수도 있다. 이제는 원하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다. 어쩌면 권력의 공간이 조금씩 우리 모두에게 나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은 ‘제약 조건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는 말이다. 단점이 오히려 그 건축만의 특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잘 살려내면 자기만의 개성이 된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는 대개 부족한 부분을 감춘다. 가장 아름다운 단면만 보여주기 때문에 비슷한 모습이 반복된다. 결국 차별성이 사라지고, ‘한 줄 세우기’라는 경쟁만 남는다.



온라인 공간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이 더 좋다. 부족한 면마저 함께 나누며, 다양성과 개성이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늘도 나는 근처 식당을 누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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