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도, 미래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우선, 완전 속았다.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사망으로 진화론 학자들이 한 곳에 모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실제 토론이 아니라 ‘만약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하는 가상의 설정이었다. 그 상상 속 토론의 이름이 바로, 한국인 장대익 교수님이 지은 『다윈의 식탁』이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편이다. 완전 찐 팬이다. 그리고 반대쪽 리더는 스티븐 제이 굴드다. 팀원들과 함께 주제별로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난 도킨스의 입장, 즉 유전자가 진화의 중심이며 조금씩 서서히 변화한다는 쪽이다. 굴드는 반대로 단속평형설, 즉 오랜 정체 뒤 짧은 폭발적 변화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진화가 유전자뿐 아니라 개체나 집단 수준에서도 일어난다고 본다.
대화가 얼마나 리얼했는지, 이건 진짜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면 쓸 수 없다 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서로 주고받는 말속에서 인간적인 감정까지 느껴진다. 너무 생생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글을 다 읽어갈 즈음 깨달은 것이 있다. 도킨스의 이론에서도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살짝 슬펐다. 난 완전 도킨스의 절대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책이다. 무려 50년 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심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게 오히려 더 놀랍다.
요즘은 ‘이보디보(Evo-Devo)’ 같은 새로운 흐름도 등장했다. ‘이보디보’는 진화생물학(Evolution)과 발생학(Development)을 합친 말로, 유전자의 변화가 어떻게 몸의 형태 변화를 이끄는가를 탐구하는 분야다. 또 ‘다수준 진화’라 해서, 유전자뿐 아니라 개체·집단·종 전체에서도 선택이 일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고 도킨스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의 이론이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게 바로 과학이다. 누구나 틀릴 수 있고, 그 틀림이 다음 도약의 씨앗이 된다.
도킨스가 길을 열었다면, 굴드는 그 옆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다. 그가 있었기에 진화론은 더 단단해졌다. 진화론계의 ‘미꾸라지’ 같은 존재다. 물을 흐리지만, 그 덕분에 생태계는 건강해진다.
나는 진화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 도킨스를 처음 만나고부터 굴드를 싫어했다. 막연히 고집 세고 구식인 학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일고는 달라졌다. 굴드에게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매력이 있었다. 그의 역할은 ‘반대자’가 아니라, 진화론의 균형추였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이것이다.
“진화는 땜장이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이 말은 프랑스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의 표현이다. 진화는 거대한 설계도가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재료로 어떻게든 살아남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에 드는 한국의 진화론자를 또 알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님에 이어, 장대익 교수님.
우리는 모두 하루를 땜질하듯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순간의 선택이, 그 사람에게는 진화이자 성장이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