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오래 경험해 보면 사랑스럽다, 수학도 당신도

신박한 수학사전을 읽고 - 벤 올린

by Oh haoh 오하오

숫자는 명사

기호는 동사

공식은 문법


이 책의 핵심이다. 수학을 언어로 보자는 비유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비유에 머무르지 않고, 아예 수학을 하나의 완전한 언어로 선언한다는 점이다. 숫자는 명사이고, 기호는 동사이며, 공식은 문법이라는 이 책의 핵심 문장은 수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단번에 바꿔 놓는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금액을 읽을 수 있고, 수학 기호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수학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공통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제2언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모국어를 익힐 때도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쳤다. 우리가 말을 배우기 위해 문법책부터 펼친 적은 없다.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듣고 따라 하고 틀리는 경험을 반복하며 언어 능력이 형성됐다. 수학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수학은 체험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식과 문제풀이에 의존한다. 이는 의미를 모르는 영어 단어를 억지로 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순간적으로는 기억할지 몰라도 곧 사라지고 만다.

KakaoTalk_20251203_145632405.jpg

예를 들어 분수의 나눗셈 공식을 보자. ‘나누는 수의 분모와 분자를 바꾸어 곱한다’는 규칙은 단원에서 문제를 풀 때는 정확히 외우지만, 몇 주만 지나면 다시 헷갈려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공식이 ‘경험’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수직선을 그려보고, 구체물을 나누어 보는 시도 없이 규칙만 외운 공식은 오래 남을 수 없다. 반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하고 도전하고 틀리면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은 오래 지속되고, 공식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이것이 바로 수학을 ‘언어’처럼 배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수학교육은 여전히 공식 중심의 반복과 선행 중심의 구조에 갇혀 있다. 초등과 중등 시기에는 얼마나 빨리 선행하는지가 학습의 질을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수학을 좋아하고 앞서 나가는 아이들에게 선행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빠른 속도보다 ‘의미 있는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 너무 빨리 가는 학습은 오히려 개념의 언어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벤 올린은 ‘이상한 수학책 시리즈’를 통해 이미 좋아하던 작가였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을 먼저 써버린 사람을 만난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실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작가이지만, 수학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나와 아주 닮아 있다. 그래서 이번 신작도 무척 반가웠다.

책에는 수학을 언어로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분수는 정확성을 추구하는 언어이고 소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언어라는 설명, 1억과 10억의 차이가 ‘0 하나의 차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스케일의 간극이라는 점, 무한을 목적지가 아닌 ‘방향’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표현 등은 수학을 생활 언어처럼 느끼게 한다. 받아 올림과 받아 내림을 ‘잔돈 합치기’와 ‘큰돈 쪼개기’로 다시 표현하는 장면 또한 일상과 수학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 가운데 이런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공식은 한낱 도구가 아니라, 수학이라는 문학의 걸작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방정식의 고전이다.”

우리가 외워야 할 규칙으로만 보던 공식을, 오히려 문학 작품처럼 읽고 해석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은 수학 교육에 새로운 울림을 준다. 마지막으로 책은 빠르게 배우는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한계를 검증하고 실수를 감수할 각오가 단단한 사람일수록 더 깊게 배운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언어로서의 수학이 실수와 탐색의 과정임을 말해준다.

오래 경험해 보면 사랑스럽다. 수학도, 당신도.

people-316506_128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리뷰] 중간이 없는 사회, 도파민에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