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안주와 안전

컴포트존과 세이프존 구분하기

by 파크현

'저는 불안형인데, 남친은 안정형이에요.'라는 연애상담 글을 종종 본다. 다소 일차원적으로 묘사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감정 기복이 없고 모든 일에 일관된 태도들 보이는 사람을 '안정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커플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뽑히는 것 같다.

G8Cz5qvbYAAeht-.jpg 불안-안정 커플이라고 생각해서 가져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닉주디는 둘 다 불안형 같아 보이긴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정된 삶'이란 말을 들으면 아득하게 답답해지는 느낌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던 때부터 결혼을 닦달당하는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내게 꾸준히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신다. 아직 철이 없는 것인지 -자극 추구 기질 상 영원히 철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 그게 좋은 건지 쉽사리 와닿지 않는다.


내게 안정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이러하다. 내가 서커스의 곡예사라면 떨어지지 않도록 애초에 나를 어딘가에 묶어 운동에너지를 0으로 만들어둔 느낌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매우 안정적이다. 반면 안전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시스템에 가깝다. 일단 내가 떨어지게 놔두되, 죽지 않게는 해둔다. 말 그대로 보호망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변동이 크다. 나 자체도, 나를 받아주는 안전망 자체도.


내가 안정이란 단어에 남들보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안정'이 '안주'로 바뀌기 쉬워서인 것 같다. 운동에너지가 0인 상태가 오래되어 익숙해지다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0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이 상태가 영어로 Comfort Zone이 된다. 그물망이라기보단 침대에 가깝다. 보호망은 내게 안전하다는 기억과 함께 여러 번 다시 도약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줄 수 있지만, 침대의 안온함은 너무 강력하다. 재도약의 의지를 조금씩 앗아간다.


안정이 안주로 변하지 않으려면 '탄성'이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내게는 '탄성'을 가진 보호망이 없었다.


반면 안전망은 존재함으로써 나의 에너지를 보관하고,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내가 화분의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에 붙들려 운동에너지가 0이 되는 것이 곧 안전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공의 성질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 내게는 다시금 튀어 오를 수 있게 하는 Safe Zone이 줄 곧 필요했다.


이러던 내게 두 달 전쯤 들어가게 된,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하이아웃풋클럽에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아무리 좋은 PT선생님을 만나도 내가 운동하지 않으면 살이 빠지지 않듯이 나의 의지가 더 크겠지만... 넘치는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세이프존을 찾지 못해 세이프존과 컴포트존과 혼동하며 살던 때, 외부의 판단 잣대를 너무 오랫동안 신경 쓴 나머지 내재화가 되어버렸을 때, 적어도 돌이킬 순 있을때 알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요즘 덕분에 뭔가 해도 죽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이제 다시 튀어 올라야 하는데, 내 안의 공은 깃털로 만들어졌는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방향을 바꿔댄다. 날이 많이 추워서인가.




침대 위에서 안주하고만 싶은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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