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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과 불교 철학

by 파크현

언젠가부터 불교박람회가 인기다. 방문객의 80%가 2~30대라는 기사를 보며, 불교의 알 듯 말 듯한 메시지가 ‘밈(Meme)’과 같은 역할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종교 DNA를 이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식으로 불교 철학이 상징적으로 스며드는 시대라면, 의외로 영화 속의 ‘이 히어로 캐릭터’를 불교적으로 재해석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무작위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주인공은 ‘스파이더맨’이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스파이더맨만큼 불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캐릭터도 없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스파이더맨은 충분히 불교 철학적이다.



부처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스파이더맨도 그러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시리즈에는 수많은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심지어 종(種)까지도 제각각이다. 이 유니버스는 아주 뚜렷하게 ‘누구나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놀랍게도, 불교의 핵심 가르침과 닮았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붓다 -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 부처라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가 된 것이다. ‘깨달음’은 모든 존재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누구나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공(空)의 미학, ‘다’ 잃는 스파이더맨

수많은 버전의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만, 특히 톰 홀랜드가 연기한 ‘스파이더맨’은 가혹하지만 아름답게도 이 불교적 ‘공(空)’의 의미에 가장 가깝다. [반야심경]에 의하면, '있는' 것은 없다. 공(空)함을 깨달아야 고통에서 벗어난다. 집착을 버리고, 가진 것을 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을 지워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떠한 것이 있다.

그는 유일한 가족이던 큰엄마 메이도 잃고, 친구도 연인도 잃고, 어벤져스 타이틀도 잃고,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던 자신의 기억도 잃고, 집도 잃었다. (학력도... 잃었다) 이게 어째서 아름답냐고 누가 내게 반문한다면, 그런데도 잃지 않은 피터 파커의 선한 마음 단 하나 때문이다. 모든 걸 잃어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스파이더맨 수트 형상의 어떤 것을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길을 나선다. 그의 스파이더맨은 불법(佛法)을 수련하는 자와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떨어지기만 하는 스파이더맨도, 올라가기만 하는 스파이더맨도 없다.

스파이더맨은 다른 건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미줄을 타고 하강한다. 무서운 속도로, 다시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떨어진다. 그리곤 다시 땅 밑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높은 탄성으로 튀어 오른다. 그리고 반복한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중도(中道)'라는 것이 있다. 내려가는 것만이 답일 수 없고, 올라가는 것만이 답일 수 없다. ‘스파이더맨은 하강하는 존재인가 상승하는 존재인가?’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할 수 없다. 스파이더맨의 하강 행위는 동시에 상승의 연장선이며, 상승 행위는 동시에 하강의 연장선이다.

스파이더맨은 올라가 있다면 아래를 굽어보며 하강에 대비하고, 하강하고 있다면 올라가기 위한 자세를 바꾸고 반동 타이밍을 기다린다. 꼭 인생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자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러니 내 결론은 스파이더맨은 꽤나 동서양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보기 드문 히어로 캐릭터라 볼 수 있겠다. 스파이더맨의 정수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만큼 업(카르마)를 설명할 수 있는 문구가 있을까? 다음 불교박람회엔 스파이더맨 부스 하나쯤 마련되어도 놀라지 않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참고 서적 <불교 경전과 마음공부, 법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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