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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피디 Jul 28. 2020

콘텐츠 쪽박 100% 피하는 법

세바시 '묻고 배우다' 인터뷰 시리즈 + 이직 후일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소설 한두 편은 쓸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을 꾸준히 써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소설가의 영역뿐이겠습니까. 예술, 스포츠, 게임, 비즈니스 등 모든 영역에서 '롱런 히트' 하는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한 해에만 수십수백 개가 론칭되고 사라지는 방송가에서는 어떨까요? 프로그램이 길고 가늘게 가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계속해서 화제를 만들어 내는 장수 프로그램은 극히 드뭅니다. 더군다나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시청률이 보장되는 지상파 혹은 종편 채널도 아니라면.. 정말 그게 가능하긴 할까요? 바로 CBS의 국내 대표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의 이야기입니다.


세바시는 잘 몰라도, 한 번쯤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국종 교수라고 알아? 응급환자를 헬리콥터로 수송해야 하는데, 고작 민원 때문에 착륙을 못한다네?", "김창옥 교수라고 알아? 진짜 오랜만에 울다가 웃다가 했다니까?"라고 말이죠. 세바시는 놀라운 스토리를 끊임없이 발굴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세바시가 방송사 최초로 프로그램이 동명의 기업이 된 3년 차 스타트업이라는 점입니다.(관련기사 @노컷뉴스) 저는 이곳 세바시에 작년 9월쯤 PD로 입사 제의를 받아 합류했습니다. 이제 약 두 달이 지나면 입사한지 딱 1년이 되겠네요. 짧지만 지난 시간 동안 세바시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공유하려 합니다.


매번 약 430 명의 관객이 꽉 차는 세바시 무대. 시각장애인 최초로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가 된 신순규 씨의 강연 모습

많은 분들이 세바시를 접하게 되는 경로는 아마 유튜브일 겁니다. 현재 세바시 유튜브 채널은 2020년 7월 말인 현재, 구독자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교양 미디어 채널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단일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더욱 유일무이한 수치입니다. (참고. 7월 28일 기준 tvn insight 43.3만 명, JTBC culture 18.1만 명) 


올해 초 세바시에서는 유튜브 채널이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강연 외에 새로운 포맷을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인터뷰 시리즈 <묻고 배우다>를 기획했습니다. 기존 <세바시 강연>이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깨달음을 주는 콘텐츠라면 <묻고 배우다>는 강연자가 전문가로서 보다 실제적인 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교육 유튜버인 '빨간모자쌤'이, 세바시 강연을 통해 영어 공부뿐 아니라 인생에 필요한 동기부여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묻고배우다에서는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실제적인 팁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어 외에도 이직과 재테크를 포함해, 총 3가지 주제를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인터뷰 방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직, 영어, 재테크>는 최근 2030대가 가장 관심이 많은 주제이고 전문가들의 키 메세지도 좋았기 때문에 바이럴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파일럿 론칭 후 조회 수는 계속해서 저조했습니다. 분명 기획자로서 이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 근거도 충분하다고 믿었는데.. 도대체 새로운 포맷이 왜 바이럴이 안 되는 지 착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리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세바시 채널에서 지난 1년간 2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들을 모조리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이럴된 영상들은 공통적으로 방송사 시사교양 프로그램, 김미경TV, 김창옥TV 등 중장년층이 즐겨 보는 채널에서 추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난 3년간 세바시 채널 구독자는 중년 여성 유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동시에, 적은 비중이지만 시니어 유저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제 개인의 주관으로 생각했던 인터뷰 주제 <영어, 이직, 재테크>는 채널의 추천 알고리즘 면에서도, 인구통계학적인 면에서도 바이럴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바이럴을 기대한다면, 2030 보다는 오히려 4050 중년 타겟에 맞는 소재를 기획해야 바이럴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분기 우리팀 보고서 중에서-

이러한 가설에 따라 45-54세 여성 구독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새로운 주제, 예를 들면 <백세시대에는 누구나 혼자 사는 노후가 온다, 나이 들수록 자녀와 당당하게 멀어져라> 등 그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희소성 있는 빅 퀘스천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7월 중순 현재 <묻고 배우다> 시리즈의 인기 영상은 최대 70~80만 사이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최근 업로드된 인기 영상 <나이 들수록 좋은 친구를 잘 사귀려면>의 경우 한 달 이내에 조회 수 100만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짝짝짝)


결론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로 제가 깨달은 것은 한마디로 '콘텐츠 쪽박 100% 피하는 법'이랄까요? (듣기에는 참 폼 안 납니다만..) 결국 바이럴 대박이 나냐마냐는 누구도 100%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채널 데이터를 잘만 활용한다면 적어도 쪽박만큼은! 100% 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후일담이지만 출연하신 영상의 바이럴을 기념해 따로 막걸리를 사주신 강창희 대표님!

이제는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PD가 될 수 있는 시대죠. 시간이 갈수록 PD에게 더욱 중요한 역량은 결국 업의 본질인 기획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획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획자인 PD가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젊은 콘텐츠 기획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세바시는 제가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젊은 조직이고, 각 영역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유의미한 콘텐츠를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 경험과 연차에 비해 큰 역할과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압박감이 들 때도 있지만, 덕분에 PD로서 제 자신이 정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비록 아직은 주니어급 PD에 가깝습니다만, 이렇게 제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키다보면, 저도 언젠가.. 감히 무라카미 하루키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루키'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by 하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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