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쌍둥이들은 부끄럼쟁이입니다. 요즘은 아침마다 한 시간씩 줌으로 수업을 받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만나서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애가 탈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꾸만 화면을 끈 채로 수업에 임하곤 합니다.
화면을 켜고 수업을 들으라고 하면 그때 잠깐 뿐 이내 다시 화면을 끄고 수업을 듣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화면을 켜면 너무 부끄럽다고 합니다. 화면에 자기 얼굴이 나오는 게 의식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자꾸만 화면을 끄게 된다고 하네요. (부끄럼 많은 초등 3 아이에게 줌 수업은 쉽지 않은 도전과제입니다.)
오늘은 4~5명씩 분임조를 만들어서 역할극을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때도 화면을 끄고 있었는지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화면을 켜고 참여하게 해 달라고요. 잠시 아이 옆에 붙어서 연기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옆에 있는 게 부담스러운지 나가 달라고 해서 오래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친구들하고 연습하는 것도 꽤나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몸을 옆으로 숨겼다가, 화면을 껐다가 켰다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주도적인 관계 능력이 중요한 세상에서 부끄럼쟁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조금이라도 답해보고자 오늘의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낯가림이 심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쌍둥이 유모차를 밀며 길을 가다 보면 자주 주목을 받곤 했습니다. 특히나 할머니분들은 그냥 지나치질 않고 한 마디씩 관심을 표현하곤 하셨습니다. "쌍둥이예요? 아이고, 귀여워라. 쌍둥이 낫길 얼마나 잘했어요. 키우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아이들로 인해 전혀 모르는 분들께 관심을 받곤 하면, 저는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하고 나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공주들은 심기가 불편한 날이 많았습니다.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주로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지나가던 사람이 아이들이 귀여워서 쳐다보기라도 하면, 둘 다 기겁을 하며 (공포의) 사이렌을 울려댔습니다. 그러면 너무 당황해하시면서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저 귀여워서 쳐다보았을 뿐인데...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시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찌나 무안했던지요.
친척들끼리 모이는 날이면 어찌나 엄마만 찾아대는지, 아이들의 지극한 효심으로 인해 저는 자꾸만 부엌일에서 열외 되는 횡재(?)를 누려야 했습니다. (다들 고생하시는데 아이들만 돌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에 진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가족, 친척분들은 귀여운 쌍둥이들을 언제쯤 안아볼 수 있을까 하셨는데, 틈을 안주는 아이들에게 섭섭해하시곤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했던 나
그렇게 낯가림이 많던 아이들이 이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요. 예전에는 어른들한테 가서 팍팍 안기지 못하고 엄마만 찾아대는 게 그렇게 아쉬웠습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요즘엔 줌을 통한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고민이 되더군요.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은 저를 닮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발표하는 걸 무척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니 남편은 자기는 더 그랬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너, 우리 반이었냐?"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질 만큼 너무 부끄러웠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부끄러움이 많아서 존재감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로부터 아주 거추장스럽고, 살아가면서 많은 제약을 일으킬 수 있는 '부끄러움'이라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금수저를 물려주는 대신 '부끄러움'의 수저를 물려주었다니,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염려도 되었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줌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 걸 보면서 부끄러워서 숨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신경 써야만 하고, 부끄럽지 않아도 될 일에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그냥 편하게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가?
저는 성장과정에서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으로 인해서 심리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던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회피를 통해 수많은 기회를 회피해 버렸고,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곤 했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하는 내가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부끄러움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부끄러움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저는 언제부턴가 이 친구를 다루는 비결을 나름대로는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친구를 무시하거나 없는 척하지 않는 것, 억압하지 않고 그냥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주로 많이 하는 게 강의와 코칭입니다. 여전히 부끄러움이라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걸로 인해 하는 일에 제약을 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경험이 쌓이고 익숙해지자, 두려움은 그냥 내 마음이 만든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은 결코 나를 묶어놓는 제약이 될 수 없다는 것도요.
저는 수많은 시간 동안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며,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저와는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이들이 금수저가 아닌 부끄러움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나온 데는 이유가 있겠죠. 부끄럽지만 용기 낸 사람들, 부끄럽지만 자신을 꽃피운 사람들, 부끄럽지만 하고 싶은 걸 다 해내고 아름답게 꿈을 이룬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건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야. 부끄러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어. 지금은 부끄러워서 자꾸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어. 엄마는 충분히 이해한단다. 하지만 니 안에는 용기라는 친구도 있어. 용기라는 친구를 꺼내 보렴. 언젠가는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아무리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말이야. 그렇게 용기란 친구가 널 돕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넌 아주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