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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8마리와의 추억

개구리 잡아본 적 있으세요?

by 안세영

왕년에 개구리 잡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한 번도 개구리를 잡아본 적도, 뒷다리를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에 개구리를 키우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개구리를 키우게 되었던 추억 한 페이지를 꺼내어 볼까 합니다.


개구리는 논이나 연못 또는 개울가에서 사는 게 옳지 않은가요.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닥팔닥 개구리 됐네~' 뭐 이런 귀여운 동요도 있습니다만, 개구리를 잡거나 키운다는 건 나의 작은 사고 기준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제가 가진 생각의 틀을 무너뜨려준 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쌍둥이들은 때때로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벌여서 저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물론 엄마인 나의 한계로 인해 모든 것을 다 허용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에 마음을 열어 두려고 조금씩 노력할 뿐입니다.


작년 초여름에 글램핑을 갔을 때, 아이들은 모종의 계획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바로 개구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집에서 키우겠다는 야심 찬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올챙이나 개구리를 키우는 장면이 나왔었나 봅니다. 그 이후 개구리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노래를 불러대더군요.


그 요청이 너무나 간절하여 이번에 놀러 가면 논에서 한 번 찾아보자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집에 있던 채집통을 챙겼고, 여행 가는 내내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저는 내심 그렇게 말은 했어도 설마 개구리들을 잡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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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왠 걸요. 논두렁에 갔더니 정말로 개구리들이 많더군요. 참개구리도 있고, 청개구리도 있었습니다. 메고 갔던 가방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개구리를 잡아서 넣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청개구리는 잡았다가도 다시 놓아주더라고요. 참개구리와 청개구리는 다른 종이라서 함께 키우면 안 된다면서요.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았다가 놓쳤다가 하면서 신나게 잡았습니다. 팔딱팔딱 뛰는 개구리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잡히는지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뭐 역사적인 장면을 핸드폰에 담아내느라 직접 잡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2~4마리만 잡았으면 했는데, 참개구리를 무려 8마리나 잡았네요. 이제 그만 잡자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를 질러대며 "조금만 더!"를 외쳐댔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이렇게 개구리를 잡아본 적이 없어요. 어느 날엔가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저한테 개구리를 던져서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나름의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저에게 개구리는 매우 징그러우며 혐오오스러운 대상이었어요. 그 미끌미끌한 감촉부터가 뭔가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개구리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며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더라고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적극적인 태도에 저는 두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개구리 집 청소는 물론이고, 먹이를 주는 것 등 모든 개구리 키우기 활동을 아이들이 담당하는 조건으로 키우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처음엔 깜빡이도 안 키고 훅~ 치고 들어온 자동차를 대하듯 성가심과 당황스러움 정도의 감정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꼬물꼬물 개구리들이 어느 순간 귀엽게 느껴지더라고요. 먹이를 먹고 팔딱팔딱 뜀박질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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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투지를 불태우며 개구리 키우는 법을 검색하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더군요. (오! 이게 바로 놀라운 현장학습의 힘이겠죠.) 한 마리씩 이름도 만들어 붙여주었습니다. 대왕이, 밀웜이, 민트, 그린이, 가을이 등등.. (제 눈엔 잘 구분이 안되었지만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개구리 집을 청소해주고, 먹이를 먹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벌레를 잡아서 먹였는데, 벌레를 잡는 것도 일인지라 밀웜을 주문해서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엄지 손가락 마디보다 작았던 개구리들이 한 달새에 부쩍 통통하게 살이 오르더라고요. 넓은 논두렁이 아닌 작은 채집통에서 키우는 게 미안했는데, 쑥쑥 잘 크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느덧 우리 가족은 밥을 먹으면서도 개구리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누가 밀웜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얼마큼 컸는지 하면서요. 아이들은 놀다가도 개구리에게 밀웜을 먹이고, 종이를 펼쳐서 개구리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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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개구리 두 마리가 며칠 간격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슬퍼하면서 개구리가 죽은 원인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더니, 기생충에 감염이 되었다면 다른 개구리들도 위험할 수 있다며 걱정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한 아이가 개구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야기하다가 감정이 복받친 아이들은 개구리가 불쌍하다며 동시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 잘못이에요. 나 때문에 죽은 거 같아요. 그때 잡아오지 말 걸 괜히 잡아왔어요. 안 잡아 왔으면 잘 살았을 텐데..." 하면서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짠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개구리를 방생해주자고 하더군요. 집 근처 연못이 있는 공원은 오리가 있어서 금방 잡아먹힐 수 있다면서 지난번 다녀온 유원지에 풀어주자고 했습니다. 단, 자기들은 너무 슬퍼서 못 볼 것 같다면서 엄마와 아빠가 대신 놓아달라고 합니다. (으이그~ 이 녀석들! 이런 건 꼭 엄마를 시킵니다!)


"잘 가라. 얘들아.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 수명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가렴"



KakaoTalk_20200828_175440717.jpg 아이들이 그린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개구리 8마리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남은 6마리의 개구리를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참개구리 8마리와의 추억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잘됐다 싶기도 하고, 막상 풀어주고 나니 허전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거의 두 달 동안 먹이를 먹여 키우면서 정이 들었었나 봅니다.


개구리를 보내준 날 저도 울고 아이들도 울었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조금 달랐던 것 같지만요. 어쩌면 저는 개구리가 보고 싶다기보다는 그 개구리를 키우며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아쉬웠는지도 모르겠어요.




개구리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며 슬퍼하던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말이 있어요. 언젠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개구리가 죽은 건 결코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자연에 있었어도 잡혀 먹혔을 수도 있는 거야. 개구리가 우리 집에 와서 얼마나 예쁘게 잘 자랐니. 남은 개구리들은 자연 속에서 자기 수명대로 잘 살 거야."


"엄마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손으로 직접 밀웜 먹여 키우고, 이뻐해 주고, 청소도 잘해주고. 너희가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어. 우리 집에서 있는 동안 너희는 개구리들에게 훌륭한 엄마 보호자였어."


나의 어린 시절, 개구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개구리와의 추억은 즐겁고 소중했던 시간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생명체를 키워보는 건 아이들에게 놀라운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호기심을 충족할 뿐만 아니라, 책임감과 헌신을 배우고, 생명의 놀라움과 고귀함을 깨닫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한 번 키워봤으니 이제 또 키우고 싶다는 말이 안 나왔으면 싶지만 말입니다.


저로서는 개구리와의 오해를 풀고, 개구리가 그리 징그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개구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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