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디'와 '무한궤도'

Episode 14.

by 현서린

중학생으로서의 시작은 네게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입학 초, 영양실조와 기립성 빈혈로 쓰러진 이후로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러웠고, 스스로도 조심스러워졌다.

체육시간에도 종종 열외가 되었던 탓에 “저 애는 키 큰 아픈 아이”라는 시선이 따라붙기도 했고, 혜정이가 1학기를 마치고 방학동안 전학을 가는 바람에 짝궁을 잃어버린 너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본래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아이였다. 조심스러움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다시 웃고, 다시 어울리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어느 날, 기다리던 가을 소풍에서 찾아왔다.

건강이 안좋아 조용하게 보냈던 봄소풍과는 달리 건강을 되찾은 후의 가을소풍은 뭔가 더 기대감이 컸다.


소풍 날, 가방 속에는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과 과자, 그리고 과일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로움이 가득했고, 학교 앞에 모여 버스에 오르자 교실에서와는 또 다른 흥겨움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은 서로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치고, 창밖 풍경을 두고 내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너는 창가에 앉아 가만히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장이었던 예은이는 활발한 성격으로 반에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고, 항상 같이 다니는 단짝이 늘 옆에 붙어있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은 역시나 반장 다웠다. 너도 왠지 그 분위기에 이끌려 슬그머니 버스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어느새 흥얼거리던 네 목소리에 친구들이 시선을 돌렸고, 몇몇은 “야, 너 노래 잘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작은 반응이 너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장기자랑 시간이 다가왔다. 교실에서 늘 소극적이었던 너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늘은 다르게 해보자’는 용기가 피어올랐다. 무대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가슴은 떨렸지만, 동시에 묘한 설렘이 가슴을 채웠다.

네가 고른 노래는 1988년 8월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상은의 ‘담다디’였다.
학기초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른 너는 키가 큰데다가 머리까지 짧아져서 왠지 모르게 중성적인 이미지로 가수이상은과 비슷한 비주얼의 느낌을 풍겼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오, 담다디다!” 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너는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가수처럼,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탬버린을 들고 팔을 휘두르며 따라 추던 ‘담다디’ 특유의 안무에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너는 교실의 한 아이가 아니라, 그 공간을 가득 채운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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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아이들의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2학기 가을 소풍 전까지는 그저 조용하고 약한 친구로만 여겨졌던 너였지만, 너의 춤과 노래를 보았던 아이들은 너의 다른 모습이 자기들을 웃게 하고 흥겹게 만든 ‘에너지’ 그 자체였음을 인정해 주었다. 소풍이 끝난 뒤, 반에서는 갑자기 오락부장을 뽑았고, 누구도 주저 없이 네 이름을 불렀다. “야, 영서가 해야지. 제일 잘하잖아!”

그 목소리에 너는 귀까지 붉어졌지만,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이제부터 반의 즐거운 시간은 네 몫이었다. 반장의 자리보다 그 자리를 더 맘에 들어했던 너였다.

그날 소풍에서 네게 먼저 다가온 친구가 있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아이들에게 ‘킹콩’이라 불리던 혜정이와도 친했었지만, 먼 곳으로 전학을 간 후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연락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네 곁에 더 오래 남아 함께 지내게 된 건 연지였다.

연지는 착하고 현명하면서도 공부까지 잘하는 아이였다. 네가 조금 서툴고 엉뚱할 때에도 연지는 “괜찮아, 그대로도 좋아”라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너희는 서로 너무 달랐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끈끈한 우정을 만들었다. 게다가 알고보니 집도 언덕위와 언덕아래 직선 코스로 아주 가까워 서로의 집을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 연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너의 평생의 베프중 한명이 되었다.

연지는 이상은의 열렬한 팬이었다. 공연을 쫓아다니고, 팬클럽 활동까지 하며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은 어린 너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너도 연지와 같이 이상은을 좋아하긴 했지만, 팬클럽이라는 소속엔 속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런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연지가 속으론 조금 부러웠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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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러 12월 너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듣고는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팬이 되었다. 직접 쫓아다니는 팬은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로 기타를 더 열심히 치고,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 나도 대학생이 되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밤마다 노트에 무한궤도의 가사를 옮겨 적고, 그 곡들을 들으며 마음속에 스치는 감정을 끄적이던 그 시간은, 네가 ‘글’을 좋아하게 되는 첫 걸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꿈은 아직 멀리 있었지만, 소풍 무대 위의 박수와 환호는 분명 그 꿈의 씨앗을 심어준 소중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인 가사에 흠뻑 빠져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 것도 신해철의 영향이 컸다.

그 이후로 시집같은 끄적거림도.. 단편소설들도.. 상상하던 것들을 글로 담아내는 재미에 빠져 네가 쓴 글을 동급생 아이들에게 돌려 읽게 하기도 했으니까. 그 당시의 글들을 읽어보면 넌 많이 부끄럽겠지만, 그런 애송이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네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전하고 시도한다는 것은 용기있고 멋진 일이라 너에게 힘주어 말해주고 싶었다.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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