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친구, 그리고 성장통

Episode 13.

by 현서린

1988년 3월 중학교 입학식은 너에게 단순한 시작이 아니었다. 교문 앞에서 맞바람처럼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어린 시절의 끝과 사춘기가 겹쳐 오는 순간이었다. 교복 치맛자락을 매만지던 순간, 너는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하지만 교복 안에 담긴 건 설렘만이 아니었다. 한창 크는 몸, 불안정한 체력, 낯선 감정들이 너의 하루하루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함께였다. 검정고시 준비와 일을 병행하느라 지쳐 있었던 어머니는 딸의 입학식을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친구처럼 동행하여 네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낯선 교정에 서 있던 네게 그 손의 온기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네가 입은 교복은 빳빳했다. 키가 한창 크던 시절이라 옷은 조금 넉넉하게 맞췄고, 그래서인지 마치 네 몸이 교복에 묻힌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교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값비싼 옷이었고, 동시에 “너 이제 중학생이야”라는 사회적 신분증 같은 것이었다.

입학식 날, 네 눈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들어왔다. 오랫동안 못 본 5학년때 친구였다. 다시 만난 순간, 너희 둘은 서로를 반겨 마주 안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친구의 이름은 아마 혜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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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에서 만난 혜정은 키도 크고 덩치도 커져서 아이들 사이에서 ‘킹콩’이라 불렸다. 그러나 너에게 혜정은 힘세고 든든한 울타리였다. 곱슬머리를 질끈 묶고 해맑게 웃던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세상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마다 나누던 사소한 농담, 도시락을 까먹으며 주고받던 웃음소리, 함께 걸어가던 등굣길은 1학년 1학기 내내 너의 하루를 채워주었다.


네 담임은 체육선생님이셨다. 당시 어느 학교에나 하나쯤 있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미X개’라 불리던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단호한 목소리, 날카로운 휘슬 소리, 뛰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한 엄격한 눈빛. 모두가 그 앞에서는 숨을 죽였다. 그 당시는 선생님의 학생 체벌이 가능하던 시대.

미X개 선생님의 상징이라면 혼날 일이 있을때 체벌은, 건강에 좋다는 발바닥 때리기. 그 시절 너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 이라면 아마도 모두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을 보고 중학교 졸업 앨범을 뒤지는 분들이 있진 않으실까 싶기도 한데.. 추억은 소환하되, 비난은 없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학교보단 그 시절의 학교가 어느 면에서는 더 좋았기 때문이다.


너의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키는 빠르게 자랐지만, 영양이 부족해 기립성 빈혈에 시달렸다. 달리기를 하면 눈앞이 빙빙 돌았고, 서 있다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져 휘청거리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 날’은 어린 네게 더 큰 고통이었다. 사춘기의 시작은 달콤한 설렘과 함께, 초경이 시작되며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도 데려왔다. 담임선생님은 무섭기로 악명 높았지만, 네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이후로는 달리기 체력단련은 열외시켜 주셨다. 처음엔 그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곧 ‘나는 나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동급생 아이들은 영서 너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열외는 어쩌면 편애로 느껴져 잘 모르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쁜 소문이 되기도 했었다. 외모적으로는 큰 키와 튼튼하고 건강해 보이는 몸으로 보였기에 멋 모르는 아이들의 시선에는 그저 꾀병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중1에서 중2까지 1년사이에 키가 12cm가 자라며 급성장하는 키에 따라주지 않았던 여린 체력은 엇박자를 내며 너를 내내 괴롭혔다. 운동장에서 뛰는 대신 벤치에 앉아 반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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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근처 종합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유년시절 매년 이사를 하면서도 성적에는 큰 걱정이 없던 네가 강남지역 8학군의 교육메카 지역에 오니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경쟁이라는 사회를 실감하게 되는 것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넌 책상에서의 공부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았고, 너만의 세상에서 공상하고 꿈을 꾸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욕심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그라운드에 올라간 채영서 선수는 경쟁이 아닌 모두와 함께 가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질타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같은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웃고 있었다.

사춘기는 몸만 변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경쟁심, 누군가를 은근히 의식하게 되는 마음, 말 한마디에 이유 없이 울컥해지는 감정… 모든 게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거울 속에서 점점 달라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네가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 너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

혜정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던 길 위에서, 때론 투정 섞인 한숨 속에서도, 네 사춘기는 그렇게 빛나며 자라나고 있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었을 것이다.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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