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키던 작은 파수꾼&사춘기

Episode 12.

by 현서린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 집은 다세대 단독주택이었다.
반지하에는 네 세대가 살았고, 1층에는 영서네집과 방 한 칸짜리 원룸, 2층에는 두 세대가 더 있었다.
모두 여덟 세대가 드나드는, 늘 시끌벅적한 집이었다.
영서의 어머니는 이 집을 ‘월세를 받는 집’으로 꾸미고 싶어 하셨었다.
이전 동네에서의 도둑 사건을 겪은 후,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마음이 반영된 선택이었다. 그 집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새로운 가족은 작은 강아지였다.

발발이와 치와와가 섞인,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어린 강아지. 이름은 뜻밖에도 ‘점자’였다.
이전 주인이 붙여준 이름이었지만, 너희 가족은 굳이 바꾸지 않았다.
조금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곧 “점자야!” 하고 부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오는 귀여운 존재가 되었다. 한동안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웃기에 바빴다. 다른 이름에는 반응없는 녀석이 '점자'라는 이름에는 쪼르르 반응하고 다가오니, 이름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점자는 그당시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어미와 헤어진 어린 강아지였다. 영서와 민혁이는 서로 점자에게 작은 젖병을 물려주며 날마다 정성을 다해 키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손!” 하고 말하며 작은 앞발을 내밀게 훈련했고, '앉아"라는 말에 반응하고 꼬리를 흔들며 '기다려'를 알아듣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언젠가 친구들을 불러와 자랑하기도 했었는데, 믹스견이라는 이유로 '똥개'라고 부른 친구 녀석이랑 절교할거라고 울기도 했었지.
1년쯤은 집 안에서 함께 지냈지만, 곧 현관 계단 아래에 점자만의 작은 집을 아버지가 뚝딱 만들어 마련해 주었다. 낯선 발소리만 들려도 짖어대는 점자는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
부모님은 도둑의 공포를 아직 잊지 못했지만, 점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든든해했다.


그 무렵의 너는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었다. 예민해진 감정 탓에 집안의 풍경마저 다르게 보였다.
같은 건물에 사는 꼬맹이들은 언제나 너를 귀찮게 했다.
그들의 울음소리, 웃음소리,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마치 귀를 찌르는 소음처럼 들렸다.
너는 “정말 아이들은 싫어!”라는 표정을 짓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문을 잠가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네 마음과 반대로 흘렀다.

꼬맹이들은 오히려 너를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니며 “누나!” “언니!” 하고 부르곤 했었다.
너는 한숨을 내쉬며 도망쳤지만, 그 모습조차 그들에게는 더 재미있는 놀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잠시 동안은 2층에 엄마의 막내 동생, 그러니까 너의 막내 이모네 가족이 들어와 살았다.
그 집에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법적으로는 분명 네 외사촌 동생들이었지만, 나이 차이가 크다 보니 네게는 조카 같은 존재로 느껴졌었다.
이모가 “잠깐만 애들 좀 봐줘” 하고 부탁할 때마다, 너는 투덜투덜 대며 마지못해 아이들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간식을 챙겨주고, 울면 달래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를 싫어한다면서도 끝내 손을 놓지 못하는 모순된 모습이, 바로 사춘기 소녀였던 너의 진짜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아이들을 귀찮아하던 네가 지금은 엄마가 되어 세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시절 사춘기에는 상상도 못했을 미래지만, 아이들의 발소리가 귀찮음이 아니라 위안이 되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언젠가 세아이를 키우며 세가지 색의 보석이라고 말하는 너를 아는, 나는 이때의 너를 생각하면 너무 신기할 뿐이다.

새로운 집에서 점자는 파수꾼이었고, 너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치는 소녀였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점자의 짖음도, 꼬맹이들의 웃음소리도 모두 따뜻한 기억이 되어 남았다.
그때의 예민하고 까칠했던 소녀는 이제, 웃으며 아이들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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