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남겨진 칼 한 자루

Episode 11.

by 현서린

영서의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귀국하신 뒤, 1톤 트럭을 몰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과일과 채소를 파셨다.
시장이나 현지에서 떼온 상품들을 트럭에 가득 싣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다니셨다.
때로는 하루에 큰돈을 벌기도 했고, 언제나 아버지 허리춤에 찬 돈주머니는 묵직했다.

두툼하게 불룩한 천 주머니 속엔 늘 현금이 가득했다. 기분이 좋으실 때는 용돈을 많이 주시기도 했다.

그 무렵 영서네 가족은 서울의 어느 단독주택 2층집 1층 전세를 살고 있었다.
위층엔 집주인이 살았고, 영서네 가족은 마당을 함께 쓰는 세입자였다.
그 마당 한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잉어들이 노니는 물속은 늘 어린 너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학교를 다녀오다 연못 옆을 지나면 손에 쥔 과자나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곤 했더니, 주인 아저씨가 잉어밥 주는 먹이통을 알려주시며 하루에 딱 한주먹만 줘야지 많이 주면 안된다고 가르쳐주셨다.
잉어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모여드는 모습은 묘하게 마음을 달래주었고,
그 물결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낯선 동네와 불안정한 생활도 잊을 수 있었다.
연못은 너의 어린 시절 삼전동의 상징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평화롭던 그 집은 어느 날 밤,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온 영서네 가족 모두는 그 광경을 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버지의 돈주머니는 너덜너덜하게 찢긴 채 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반짝이는 칼 한 자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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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칼은 낯선 것이 아니라, 집 부엌에서 늘 쓰던 칼이었다.
도둑은 밖에서 무기를 들고 온 게 아니었다.
부엌에서 칼을 집어 들고, 아버지의 돈주머니를 난도질하듯 찢어 현금을 쓸어 담은 뒤, 흔적만 남긴 채 달아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날 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방을 나섰거나, 인기척을 냈더라면, 그 칼은 단순히 바닥에 놓여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재산을 잃었어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감사의 이유가 되었다.

두고두고 그 날 일을 회상할 때, 누구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도둑이 가족들 누구의 방에도 발을 들이는 일도 없었다. 돈은 모두 사라졌지만, 가족의 목숨은 지켜졌다.

그것 하나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그 집에 더는 머무를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어느 한 동네에 단독주택인 집을 장만했다.
안전을 위해, 두려움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동네에서의 생활이 그 날 하루만의 이야기로 축소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소소한 추억들도 남겼다.
영서 너는 외할머니와 함께 앉아 모자에 방울을 달거나 인형의 눈을 붙이는 부업을 했다.
하나에 20원, 30원씩 하는 그 부업은 같이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동네 이야기와 수다거리. 외할머니와의 잔잔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10원짜리 봉투 붙이기보다는 훨씬 짭짤했기에, 저녁마다 잠시 손을 놀리며 용돈을 벌 수 있었다. 야물딱진 손으로 그 어린 나이에도 실수없이 부업을 하던 너는 빨간색, 파란색의 작은 방울들이 손끝에서 흔들릴 때마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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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연못, 부업, 그리고 그 밤의 공포까지.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에서의 기억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풍경처럼 지금까지도 네 마음 속에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동네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가 되었든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네가 살아왔던 그 시절 그 동네에서의 이야기는 이제는 그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세월의 흔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린시절의 기억을 돌아보며 이렇게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고 한다.

외할머니에게는 집안에서 가장 맞이인 첫손녀였던 덕분에 수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으니..

외할머니와 엄마와 너의 공통점은 모두가 첫째 딸, 집안의 장녀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어떤 유대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같은 성향을 가진 부분이 부딪치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넌 늘 너에게 언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아니면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도...

사람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의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

남의 집에 들어가 거실에 칼 한자루 챙겨 놓고, 돈을 훔쳐 사라지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행동했을까?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결국 스스로의 자유의지가 삶을 결정하는 것이란 건 정말 맞는 이야기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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