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별이 빛나는 밤에..

Episode 15.

by 현서린

1988년은 한국 역사에서 특별한 한 해였다. '86 아시안게임'을 뒤이어 '88 서울올림픽’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고, 거리마다 세계 각국의 언어와 깃발이 가득했다. 네가 살던 동네에서도 올림픽의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이면 곳곳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 있었고, 슈퍼마켓 진열대에는 처음 보는 외국 과자들이 놓였다. 아이들은 과자를 하나씩 사 먹으며 “이게 바로 올림픽의 참 맛이야!”라며 신기해했다. 어쩌다 종합운동장 근처로 가면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영어로 길을 안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너는 그때 영어라는 언어가 살아 움직인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넌 그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정말 잘하고 싶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세상은 또 다른 얼굴을 가졌다.

책상 위 스탠드를 켜고 조용히 다이얼을 맞추면, 정적을 깨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별이 빛나는 밤에, 저는 DJ 이문세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속 비밀 놀이터와도 같았다.

잔잔하고도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교과서와 문제집이 쌓여 있어도, 라디오 앞에 앉으면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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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에는 수많은 코너가 있었다. 엽서를 보내면 DJ가 직접 읽어주기도 하고, 익명의 사연에는 웃음과 눈물, 풋풋한 고백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날은 짝사랑하는 친구 이름을 적어 보낸 사연이 소개되었고, 다음 날 학교에서 그 이름의 주인공이 부끄럽게 웃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너 역시 몇 번이나 엽서를 써 보냈다. “어제 학교 소풍에서 제가 ‘담다디’를 불렀어요. 친구들이 정말 많이 웃고, 박수도 쳐줬답니다.” 비록 사연이 읽히지는 않았어도, 우체통에 엽서를 넣을 때의 설렘은 네 마음을 벅차게 했다. 마치 네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세상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같았다.

“혹시 DJ 이문세가 내 이름을 불러줄지도 몰라.”

별밤을 들으며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점점 커졌다. 누군가는 짝사랑을, 누군가는 가족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음악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 모든 사연이 네 마음에 작은 불씨가 되었다. 언젠가 네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열망.


낮에는 올림픽의 열기가 거리를 달궜다. 학교 복도에는 ‘올림픽 표어 쓰기 대회’ 포스터가 붙었고, 호돌이 마스코트가 새겨진 노트, 열쇠고리, 필통은 필수템이었고, 교실마다 호돌이가 가득했다.

올림픽 개막식 날,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하얀 도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태권도를 시범 보이고, 특히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라는 주제가가 흘러나올 때, 너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함께 따라 불렀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세계가 하나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 탁구 대표팀이 결승전에 오른 날이었다.

유남규선수가 라켓을 손에 쥐고 서 있을 때, 너는 손에 땀이 줄줄 흐르는 걸 느꼈다. 점수가 오를 때마다 거실은 환호와 탄식으로 뒤섞였다. 2세트를 내줬을 땐 모두가 숨을 죽였고, 다시 따라잡을 땐 네 심장도 함께 뛰었다. 마지막 매치 포인트에서 상대의 공이 네트에 걸려 떨어졌을 때, 유남규가 두 팔을 번쩍 추켜올렸고, 민혁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겼다!!! 금메달이다!!!” “진짜 멋지다!”

텔레비전 속에서 울음을 삼키는 선수들의 얼굴이 네 마음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현정화·양영자·안재형 같은 국가대표 탁구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빛내던 그 해에는 곳곳에 탁구장이 들어섰고, 아이들이 “나 현정화처럼 탁구선수 할래!” 하며 탁구치는 모습을 흉내 내던 장면도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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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라디오 앞에 앉아 별밤 가족이 되었고, 낮에는 올림픽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그 해는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주제가 될 만큼 파란만장하고 대단한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모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을 것이다.
네 마음에 꿈을 심어주었던 그 해 1988, 라디오는 너에게 음악과 글을 향한 감성을 키워주었고, 올림픽은 너에게 세상은 훨씬 크고 넓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무렵 너는 교회에서 찬양팀에 들어가 유일한 여학생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손끝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네가 좋아하던 가스펠의 선율을 따라 흘러나왔고, 유명한 CCM 가수들이 다양한 음반들을 많이 내놓던 그 시기에 대중가요와 가스펠 찬양들이 겹쳐지며 세련된 음악들이 교회안에 가득하고,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 시절 네 마음속에는 이미 음악과 세상,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네가 5학년때부터 다니던 교회는 서울에 위치한 아주 유명한 교회였다. 그 당시 엄청난 존경을 한몸에 받는 목사님이 계셨고, 제자훈련이라는 교육이 시작되었던 그때가 아마 한국의 기독교 최 전성기였던 시대였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때론 영화속이나 드라마에서 악당들이 죄를 짓고도 두 얼굴의 모습으로 뻔뻔하게 기도하며 등장하는 모습을 볼때면 참 마음이 아프다. 사실 진짜가 있기에 가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혹 간과하곤 한다. 수많은 가짜 종교가 기독교를 표방하고 따라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 진실이기 때문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진짜는 수많은 가짜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 생명력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니,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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