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0
학교 안팎으로 너의 마음은 상처로 곪아가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너는 누구보다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다.
사람들은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기에, 네가 상처를 가슴 깊이 감춘 채 ‘무대’를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너는 축제를 위한 한 코너의 연출을 맡기로 추천되었다.
누가 먼저 네 이름을 올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영서라면 뭔가 해낼 것 같다'는 기대가 담긴 추천이었다.
너는 망설임 없이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맡겨진 일에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던 너는 그냥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상처는 가슴에 묻어두고,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는 무모할 정도로 거대한 댄스 뮤지컬을 기획했다.
탱고, 디스코, 왈츠, 브레이크댄스, 캉캉, 러시아 전통춤, 차차차, 람바다…
춤이라는 춤은 모두 한 무대에 쏟아붓는, 지금 생각해도 대담하기 그지없는 작품이었다.
출연진도 많았고 연습량도 어마어마했지만, 너는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겼다.
그 시절 음악 편집은 오늘처럼 클릭 몇 번이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데크 두개짜리 카세트를 가지고, 한쪽에 테이프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일시중지를 누르고, 다른 테잎으로 교체해서 재생했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음악 사이를 이어 붙이는 말 그대로의 ‘손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100% 수작업'이었다. 10곡을 편집해서 1곡으로 이어 붙여야 하는 수작업. 하지만 너는 그 밤들이 하루하루 행복했다.
너 자신의 손끝으로 모든 무대를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모든 춤을 기억하여 안무지도를 하고, 남학생 역할이 필요한 곳에 너와 신수현이라는 친구가 반복 출연하여 춤을 췄다. 마이클잭슨의 문워크로 마지막을 장식하며 중학교에 이어 댄스뮤지컬 연출과 공연까지 무사히 끝냈더니, 한동안 교내에서 선생님들에게 어느 학교 남학생들을 섭외했냐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뜻이니까... 긴 머리를 짧게 컷트한 보람이 있었달까...
덕분에 치마를 입어야 하는 교복은 네가 머리를 길러낼때까지 아주 어색한 복장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때 축제 인연이 되어 신수현이라는 친구와 네가 더 가까워 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친구. 짧은 머리에 군인 모자를 눌러쓰면 누가 봐도 남학생처럼 보이는 너희 둘은 공통점이 있는 여학생들이었다.
시크하게 생겼지만 속은 따뜻했고, 과묵했지만 눈빛은 선명한 아이.
쿵푸를 배운다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겉은 강하지만 속은 예민한 그런 친구였다.
둘이 함께 사복을 입고 걸으면 사람들은 남학생들이라 생각하는게 일상다반사.
너는 키가 큰 데다 짧아진 헤어스타일 덕에 뒷모습까지 완전히 남학생 같았고, 목소리도 낮아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가끔 비명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런 너와 수현이가 함께 있으면 누구도 쉽게 다가올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있어서 '그들만의 리그'처럼 동질감에 더 가까워졌던 거 같다.
그때 반 친구였던 허나영은 수현이를 좋아했다. 공연때 신수현과 람바다를 같이 추기도 했던 이유로 그 감정은 생각보다 더 깊었던 거 같다.
그래서 너와 수현이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유독 신경 쓰곤 했다. 그 시절 유행하던 까만 뿔테 안경이 있었는데, 너와 수현이가 원래부터 비슷한 안경을 쓴 것을 보고, 나영은 갑자기 안경을 장만해와 비슷한 스타일로 따라 하기도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행동이 질투와 시기, 사춘기의 미묘한 감정들이 뒤엉킨 어린 마음의 몸부림이었음을 알지만, 그때의 너는 그런 감정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의 골목에서 너와 수현이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었고,
그 웃음은 너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유일하게 순수하고 빛나는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반짝이던 인연도 너무 뜨겁게 불타오른 촛불처럼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2학기가 되면서 나영의 사소한 이간질이 시작되었고, 오해는 설명할 틈도 없이 관계 속으로 스며들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의미 없는 오해를 만들었고, 그 오해가 서로를 멀어지게 했다.
결국 너와 수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마도 넌 잘못한 것이 없음을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러면서도 헤어지자고 말했던 중학교 선배의 그림자가 결국 '떠날 사람을 잡지 않는다'는 공식을 만든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복도에서 스쳐 지나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말을 걸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사과해야 할 이유도, 억지로 잡아야 할 명분도 어느 것도 둘 다 마음에선 사라져 있었다.
이과반으로 간 수현이와 문과반에서 미술실과 음악실을 왕복하던 너는 점점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부터의 베프인 연지도 이과반으로 가 있었으니, 너의 고등학교는 점점 더 조용하고 고립된 장소가 되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우정은 정말이지 잠시 스쳐간 열병 같은 것이었다.
너무도 뜨겁게 시작했지만, 더 차갑게 식어버린 인연.
하지만 상처였을지라도 분명 소중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함께 춤추고 웃으며 보냈던 그 몇 날 며칠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너의 가슴 속에서 빛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잠시나마 너를 웃게 해준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진실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간 중 유일하게 조금 행복했던 계절은 지나갔고, 바람결에 그 친구가 포항공대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던 그즈음, 고3이었던 너는 절망을 경험한다.
네 인생에 힘겨운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넌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없었으니까...
삶이란... 예측할 수 없기에 더 스릴있는 인생이 되는 거겠지만...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2권으로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