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요속, 삶이 부러지는 소리

Episode 34

by 현서린

부러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너의 담임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키는 크지 않았고, 피부는 까무잡잡하셨다. 선생님은 이상하리만치 너를 편하게 대했다. 이미 너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껏 고등학교 영어수업시간 내내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총 10개가 넘는 반을 지도하는 영어 선생님도 한분이 아니셨으니까. 수업을 전혀 받아보지 못했던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으니까. 너는 그 분을 처음 보았다.

“기타 잘 치더라. 너 중학교때 축제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거 봤다.”
“이제보니 키도 크네. 우리반에서 제일 큰가?”

말끝은 가벼웠다. 그리고 그날,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반 1번은 너 해라. 그리고 네가 제일 크니까 그냥 네가 반장해.”

그 말은 교실 안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들은 웃었고, 너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자리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는 사람은 그땐 없었다. 나중엔 후폭풍이 되어 몰려왔지만...

고3의 시간은 조용히 조여 왔다. 입시와 성적, 진로와 비교가 매일같이 교실의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굳어져 갔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너는 여전히 미술학원을 오갔다. 고2 때 선물로 받았던 싸이클 자전거를 타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오갔다.
그 시간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빠르게 폐달을 밟으며 달리는 넌. 짧은 순간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깁스를 한 채 운전하던 금은방 주인의 차가 너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앞바퀴가 그대로 찌그러지며 몸이 잠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떨어졌다.

보도블록의 모서리가 너의 허리를 갈랐다.
왼쪽 허벅지에 감각이 사라졌다. 길 위에 엎드러진 채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학생!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차에선 깁스를 한 남자가 천천히 나왔다.

그 이후의 장면들은 조금씩 끊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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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9일부터, 다섯 달. 병원은 너의 또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침대, 치료실, 복도. 같은 동선이 반복되었다. 매일이 비슷했고, 그래서 더 길었다.

6월 17일을 앞둔 어느 날, 같은 병원에 유명 연예인이 입원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병원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고, 너를 보러 온 친구들은 입구에서 멈춰 섰다.

“노X즈 팬들이죠?”
“지금은 출입이 어렵습니다.”

생일을 축하하러 와준 친구들은 졸지에 아이돌 팬으로 오해를 받아버렸다. 손에 케이크와 선물까지 들려있었으니, 더 오해를 했겠지. 너는 휠체어를 타고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익숙한 연예인이 함께 탔다. 다친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거 같았다. 코뼈가 부러졌다고 했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방송중에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1층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을 만나 문병 온 것을 확인하고, 병실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그날의 생일은 병원 로비에서 지나갔다. 네 하루는 그렇게 유명인의 소란스러운 일로 밀려났다.

하필이면 같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말이다.

몸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허리를 다친 너는 교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엄마는 쿠션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준비했고, 담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석일수는 맞춰야 해. 유급은 안된다. 넌 내가 꼭 졸업 시킬거니까. 하루 한 시간이라도 얼굴 보이고 가.”

목에는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지각증과 조퇴증이 걸렸다.


오전 치료를 마치고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이었다. 도시락은 없었고, 매점에서 밀릴 몸도 아니었다.
그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한 교시를 듣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 짧은 시간에도 교실의 시선은 예민했다. 체벌과 기합이 존재했던 그 시절에 기합이 내려질 때마다 홀로 열외되는 너의 모습은 어떤 기준에서는 공평하지 않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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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드는 벌칙. 그건 네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은 더 많은 말을 요구했으니까.

너는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특히 그랬다. 너를 좋아해주시는 선생님께 네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금 힘들다고 그러한 사실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교실에선 점점 조용해졌다. 말은 줄어들고,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아무도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했다.

삶이 부러지는 소리는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크게 울리지 않고,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부터 천천히 금이 간다.

어느날 부터 반 아이들과 달리 너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의자'는 교실 구석에 놓여 있었다.

발자국에 짓밟힌 채, 다리가 비틀린 채, 먼지가 묻은 채로.

발자국들은 매일 선명했고, 그 일은 계속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이었다.

교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그 의자가 보였다. 네 자리에 있어야 할 의자는 늘 한쪽에 밀려 있었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그랬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의자를 끌어와 손으로 먼지를 털고, 화장실로 가 수건에 물을 묻혀 한 번 더 닦아낸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 놓았다. 그 행동이 반복될수록 의자는 점점 더 낡아갔고, 너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너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의도가 없다고 말하면, 너의 불편함만 과장이 될 것 같았으니까.

삶이 부러지는 소리는 이렇게 들리지 않게 온다.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반복 속에서.

그 시절의 너는 울지도, 항의하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의자를 닦았다. 그게 그때의 네가 선택한 버팀의 방식이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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