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지만, 멈추지 못했어

Episode 33

by 현서린

보았지만, 멈추지 못했던 너는 이미 불편함을 보았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비슷한 경계에 서게 되었다.
세상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위험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삼총사를 만나 독서실을 옮긴 뒤, 너는 조금 안도했다.

독서실은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정돈된 곳. 공부하는 아이들, 총무의 책상, 휴게실의 사발면 냄새까지—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유 훈 총무,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 했다. 잘생겼고, 말수가 적었고,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너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유 준이 있었다.

처음엔 몰랐다. 둘이 남매라는 것도, 독서실 위층이 그들의 집이라는 것도.
유 준은 '훈 총무'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거칠고 직선적이었고, 웃을 때조차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가장 정확했을 것이다.
건물주인 그 아버지는 덩치도 크고 인상도 강해서, 한 번 마주친 뒤로는 피하고 싶었고, 훈 총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휴게실에서 삼총사와 이야기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유 준, 그녀는 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영서보다 한 살이 많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다만, 훈 총무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너를 안심하게 했다.

너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그 불편함을 ‘성격 차이’쯤으로 넘겼다.

그녀는 너를 자주 불러냈다. 이유는 늘 사소했다. 잠깐 이야기하자거나, 같이 어딜 가자거나.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다. 담배, 술, 어른들이 모르는 밤의 시간들. 알았을 때는 이미 몇 번의 만남이 지난 뒤였다. 너는 판단을 미뤘다. 불편했지만, 거절하지는 못했다.

그 시절의 너는 아직 ‘싫다’고 말하는 방법보다 ‘괜찮은 척하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그때마다 너를 한 발짝 더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멀어지기엔 이미 몇 번의 시간이 쌓여 있었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너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노래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지금도 너에겐 모욕에 가까웠다. 노래는 연습의 결과여야 했고, 흐려진 감정 위에 얹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너는 혼자 노래방에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도 술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지하철역, 가까운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그 시절을 그 곳에서 살았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 법한 체인 노래방에서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고, 목을 풀고, 다시 부르며 돌아왔다.

혼자서 밥 먹는 건 싫어하는 영서, 너는 혼자서 노래방 가는 것은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못했다.

유준은 네가 노래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같이 가고 싶어했고, 그럴 때마다 술을 마시고 싶어했고, 너는 거부했다. 그것이 유 준을 매우 기분 나쁘게 했다.

결정적인 날은 갑자기 왔다.
어느 날,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 유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친 목소리로 대학역 근처 치킨집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오지 않으면 내일 학교로 직접 찾아오겠다는 말.

너는 망설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너무 커 보였던지, 동생 민혁이가 따라 나섰다.

뭔가 안좋은 예감에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지만, 멈추지 못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예감이 들었다.

네가 무서워했다는 걸, 그때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학역 근처로 가는 버스안에서 너는 계속 불안함을 느꼈다. '그냥 돌아갈까?' '정말 내일 학교로 찾아올까?'

치킨집에 도착했을 때, 유준과 그녀의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가게 안에는 어수선한 기운만 남아 있었다.

가게 주인은 너를 붙잡았다.

“어, 너구나. 이제 도착했네. 계산하고 가. 여기 있던 네 친구들이 네가 계산한다고 하고 다 도망갔어.”
치킨값과 술값을 계산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주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날카로웠다. 너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요…? 저는 그냥 불려 온 거예요.”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전화 받았잖아? 전화 한 네 친구가 여기있던 애들이었잖아. 치킨이랑 술 다 시켜서 먹고 도망갔어. 네가 계산하러 올거라고 하면서... ”

술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저희 미성년자예요.”

네가 말했을 때,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그때, 민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아주머니, 누나랑 저는 지금 여기로 안오면 학교로 찾아온다고 협박해서 왔어요. 저희가 같이 먹은 적도 없잖아요.”

주인은 너희 둘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 했다. 잠시 뒤, 한숨 섞인 말이 나왔다.

“경찰 불렀으니 우선 잠시 기다려봐.”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가게 안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벽에 붙은 메뉴판, 기름 때가 살짝 묻어 있는 사진들, 바닥에는 누군가 급하게 일어나다 놓친 듯한 휴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너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민혁이의 발 쪽으로 내려갔다. 움직이지 않은 채 바닥에 붙어 있는 신발 끝이 유난히 또렷해 보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이 왔을 때, 너는 의자 끝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진 상태였다.

“어떻게 된건지 이야기 좀 들어 볼까요?”

경찰의 질문에 너희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번에도 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여기로 안오면 학교로 찾아와 난리친다는 협박 전화 받고 왔어요. 근데 오니까, 그 사람이 없었고요.”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너는 아무것도 몰랐다. 왜 네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도, 왜 네가 계산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도...

경찰은 잠시 상황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전화를 걸어서 학생을 불러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죠? 누군지 이야기 해주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학생들은 가도 됩니다. 혹시 내일 그 아이들이 학교로 찾아온다거나 하면 꼭 신고하고요.”

그 말이 나왔을 때,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혁이도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 너는 독서실을 끊었다. 유준을 다시 보지 않았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독서실... 그 공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지만, 네 안에서는 이미 하나의 장면이 캡처되어 있었다.

만약 혼자 갔더라면.. 만약 민혁이 없었다면.. 만약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너는 알고 있었다.

위험은 늘 표정을 바꾸고 다가온다는 것을.
그리고, 알고 있어도 멈추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때의 너는 어렸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이른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위험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쁠 수 있다는 걸 아직 끝까지 믿지 않았던 아이였다.

보았고,
알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그 기억은 지금도 그대로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처럼,
지워지지 않는 장면처럼.

그리고 그날 이후, 너는 조금 더 조심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분명하게.

그 시절의 너는 이미 위험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아직 스스로를 꺼내는 법은 배우지 못한 아이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너는 끝내는 멈췄다.

늦었지만,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선은 이후의 너를 지켜주는 아주 단단한 기준이 되었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 모든 이가 다 좋은 사람일수도.. 다 나쁜 사람일수도 없다. 또, 어느 기준에 따라서 너에게 좋은 사람이 타인에게 나쁜 사람일수도, 너에게 나쁜 사람이 타인에겐 좋은 사람일수도 있다. 결국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나 알게 된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남아있게 될지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그래서 나는 네 삶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누구보다 잘 살아갈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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