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노래, 다른 방식

Episode 32

by 현서린


낭랑18세 라던가... 그 여름, 너에게 또 하나의 가게가 네 일터가 되었다.

네가 살던 집 근처 아파트를 따라 걸으면 아파트의 담벼락이 끝나는 맞은편, 건물 1층에 있던 작은 레코드점.
가게 이름은 이제 또렷하지 않지만, 그 안에 흐르던 소리들은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 했던 너.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들리던 건 카세트 테이프가 돌아가다가 음악이 끝나서 저절로 버튼이 튀어 오르던 소리.
조금 뒤에 LP 바늘이 내려앉는 사각 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 하는 소리, 그리고 벽 한쪽에서 CD 플레이어가 윙 돌아가며 내뿜던 맑고 단정한 음들이 한 공간에 겹쳐 흘렀다.

카세트, LP, CD. 세 가지 방식의 음악이 아무렇지 않게 같은 공간에 공존하던 그 때였다.


같은 노래가 어떤 날은 테이프의 늘어진 음으로, 어떤 날은 바늘 끝의 미세한 잡음으로, 또 어떤 날은 지나치게 깨끗한 음질로 흘러 나왔었는데, 이제는 기억속의 그 소리들이 그립고, 아득하다.

지금은 소유하지 않는 구독의 시대, 음원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돌 팬들은 여전히 소장용CD와 포토북이 들어있는 앨범을 구매한다고 하긴 하지만 시대가 참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건 이렇게 추억을 돌아볼 때 더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너는 그 가게의 단골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또 다시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2번째 일자리.

일머리가 좋았던 너는 역시가 역시라고, 서점에서 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일하면서 쏟아낸다.

고등학교 방학 동안, 하루 여섯 시간. 시급은 1400원.
노랫말을 적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타를 내려놓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 너를 누가 고등학생으로 보았겠는가...

그래서 손님들은 그냥 물건을 바로 사가지 않고, 너에게 물었다. 3가지 다른 방식중에 어떤 게 그 노래 감성에 더 맞을지 말이다. 사실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 넌 늘 누군가의 질문을 성의있게 대답하고 싶어했다.

“이건 LP로 들으시면 뭔가 감정이 더 간질간질 해서 더 좋더라구요.”
“이 노래는 테이프가 더 잘 어울려요. 마지막에 노래 다 끝나고 그냥 끄지 마시구요. 저절로 버튼이 탁 꺼지는 타이밍까지 즐겨보세요. 그것까지 들어야 이 노래가 완전해져요. ”

너는 늘 정답처럼 말하지 않았고, 추천은 하지만 취향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같은 음악이라도 사람마다 듣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추천을 받고 다녀갔던 사람들이 나중에 와서 좋았다고 피드백을 해주면 하루종일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그 레코드점에서 일한지 며칠이 흘렀을까, 너는 낯익은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한양서점에서 마주쳤던 그 남학생 셋. 신이수, 이윤형, 김선우.

중학생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반가움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와~ 누나 이젠 여기서 일해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 말 하나로 충분했다. 그때부터 너희는 서로의 생활 반경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삐삐번호를 주고 받았고, 같은 독서실에 다니게 되었다. 동네에서 가장 크던 그 독서실은 1층부터 3층까지가 공부하는 공간이었고, 4층과 5층은 주인의 집이었다.

총무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고, 그중 한 명은 주인의 큰아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훈 총무’라고 불렀다.

유 훈 - 연예인처럼 잘생긴 훈남이라 독서실은 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고, 오고가는 아이들로 계단은 늘 복잡했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러 왔고, 누군가는 공부보다 사람을 보러 왔다.

그 사실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시절이었다.

휴게실에서는 사발면 냄새가 늘 배어 있었고, 삼총사는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잠시 잠깐씩 거기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너는 그 틈에 앉아 그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아직은 가볍지만 희망찼던 꿈들.

연지도 그 독서실에 다녔다. 약속하지 않아도 가끔 마주쳤고, 눈이 마주치면 짧게 웃으며 서로를 응원했다.

연지는 늘 바빴다. 공부에 진심이었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너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의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너도 다 알고 있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누군가는 카세트로, 누군가는 LP로, 누군가는 CD로 듣는다는 걸.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통과한다는 걸.


레코드점에서, 독서실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소리들이 같은 시간 위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의 내가 너를 보며 다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너도 언젠가는 내가 느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영서 너는 적어도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성숙해 질거란 생각이 든다.

탄생에서 18세의 삶까지 네가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삶은 이 평행우주에서 평화롭게 흘러갈 수 있을지...

너는 지금 들리는 그 모든 소리를 다 괜찮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감각이었는지 굳이 말로 붙잡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지금의 시간을 사는 너를 많이 응원한다. 채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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