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5
중학교 3학년 교회 여름 수련회에서, 너는 용호영을 만났다. 같은 조가 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지만, 대화는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호영이는 젠틀했고 유쾌했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았고, 웃음은 과하지 않았으며 농담 뒤에는 늘 상대를 배려하는 한 박자가 있었다.
잘 웃고, 잘 들어주고, 필요할 땐 꼭 할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수련회가 끝난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는 호영이가 너와 같은 방향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서의 아빠가 수련회의 짐이 많은 영서를 위해 교회로 데리러 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너는 순간 망설이기도 했다. 아빠의 차는 보통의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었기 때문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같이 타고 가자는 말도 어쩌면 호영이가 별로라고 생각하거나 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때문에... 말 꺼내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호영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영서와 함께 아빠의 트럭에 올라탔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것도 잊지않고... 아빠의 트럭을 타고 호영이와 함께 돌아가게 되었다.
너는 가운데, 가장 불편한 자리에 앉았다. 호영이가 먼저 내려야 했고, 그래서 당연히 네가 그 자리에 앉는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네 방식의 배려였다.
트럭 안에서는 아빠의 오래된 농담이 시작되면 호영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유머의 결이 잘 맞았고, 웃음의 방향도 비슷했다.
“요즘 유행하는건데.. 너희들은 이런 거 모르지?”
아빠가 허허실실 웃으며 말씀하면,
“아버님, 그건 이미 유행 지났죠. 혹시 이건 아세요?”
호영이는 웃으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다. 너는 그 장면을 조용히 미소지으며 보고 있었다.
호영이는 누구 앞에서도 자기 위치를 잘 알고 대처하는 현명한 아이구나... 그걸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호영이는 교회가 끝난 후에 아주 가끔 영서네 집에도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
교회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고, 엄마도 아빠도 편하게 맞아주셨다.
밥을 먹고, 앉아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그 시간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마치 아주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처럼...
너희는 함께 한강에 가 유람선을 탔고, 자전거를 탔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너를 위해 노래방에도 갔고, 목적 없이 대화하며 마냥 걷기도 했다. 놀이동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호영이가 영서때문에 딱 한번 롯데월드에 갔을 때는 롤러코스터를 못타는 호영이를 놀라워 하기도 했다.
이성 친구였지만, 그 관계를 규정할 필요는 없었다. 서로 오해하지 않았고, 굳이 선을 긋지 않아도 괜찮았다.
호영이는 부모님이 교회에 함께 다니지 않으셔서 혼자서 멀리까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같이 다니는 또다른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래서 돌아갈 때 가끔 너와 함께였고, 그 길은 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호영이도 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마다 곁에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그의 중심이 있었고, 그에게도 오래된 동성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서운함보다는 이해가 먼저였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주 보지 않아도, 오래 연락하지 못해도, 다시 만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어지는 사람.
지금 돌아보면 호영이는 네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도, 강렬한 사건의 주인공도 아니었다.
대신 오래 남아 있는 방식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만남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축복이었다.
우스개 소리로 한강유람선을 타면서 했던 말중에 나중에 호영이가 자기가 건물주가 되면 영서에게 그 빌딩 한층을 무상으로 빌려주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늘 심각하게 다큐를 찍는 영서는 어린 시절 우정의 선물이라 외쳤던 그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시절.. 순수하고 따뜻했던 그때의 너희는...
지금은 각각의 따뜻한 믿음의 가정을 만들었고, 아이들을 키우며 여전히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우정을 과시하며 1년에 적어도 6번 이상은 만나는 사이다.
호영이도 영서도 서로의 배우자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런 시간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세월이 지나보니 모든 게 은혜이고, 감사인 것 같다.
남은 인생의 삶도 이해하며 같이 걸어가는 진정한 친구로 영원하기를 소망한다.